이상국 시인 ‘뿔을 적시며’ - 하재연 시인 ‘세계의 모든…’전혀 판이한 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두 시인의 시집이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상국(66) 시인의 시집 ‘뿔을 적시며’(창비)와 하재연(37) 시인의 시집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문학과지성)이다. 전자가 전통적 서정을 보여주는 토속적인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후자는 모던시의 계보를 잇는 도시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시집은 공히 삶의 근원적인 슬픔과 아스라한 추억에의 향수를 담고 있다.

토속적 시어… 이상국 시인 ‘뿔을 적시며’

이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뿔을 적시며’는 강원도의 토속적인 정서에 뿌리를 두고 기울어 가는 농촌공동체의 아픔과 슬픔을 담백한 어조로 읊고 있다. 아울러 핍진한 현실인식을 견지하면서도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순응하며 살아가는 순박한 삶의 풍경들을 낮은 목소리로 전한다. 자연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정갈한 언어들은 삶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예컨대 이 시인은 이렇게 읊는다. “옹기 장수가 왔다/ 어느 날 서리처럼 왔다/ 지게눈을 한껏 높이고/ 하늘에 닿을 듯 자배기며 동이를 지고 왔다/ 감나무 이파리가 상기 퍼런데 일찍도 왔다며/ 어머니가 날기 멍석을 치워주자/ 입동 전 첫물을 지고 가마를 떠났단다/ 산그늘 아래 우리집 누에방에 짐을 풀고/ 한 사날 바꿈이를 하고 나면 그는 또 바람처럼 떠날 것이다”(시 ‘어린 가을’ 중에서)

수십 년 전 우리네 시골의 풍경 한 장면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이제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토속적인 풍습과 장면이다. 그래서 시인은 같은 시에서 “옹기 장수가 왔다/ 양양의 가을도 잘했지만/ 아래 데도 시절이 좋았다며/ 머릿수건으로 탁탁 몸을 터는데/ 묵은 담배냄새가 났다/ 언젠가 이런 가을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런가 하면 이순의 나이를 훌쩍 넘긴 시인의 달관한 심사 한 자락을 펼쳐 보이는 시도 있다. 시 ‘마음에게’에서 이 시인은 “마음이여/ 쓸데없이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니까 돌아온 저를 데리고/ 나는 자전거처럼 가을에 기대섰다// 구름을 보면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가면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여/ 때로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내가 어떡하면 좋겠냐고 하면/ 늘 알아서 하라던 마음이여”라고 읊고 있다.

도시적 시선… 하재연 시인 ‘세계의 모든…’

시인은 자신의 두 번째 시집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에서 건조하면서도 절제된 시어들로 지극한 슬픔을 보여준다.

시집에서는 수많은 일상의 배경과 사물이 등장한다. 그런 장면들 안에서 시인은 마치 있는 듯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음소거’된 화면 혹은 음향이 켜지지 않은 무대 같은 배경에서 시인은 세상의 모든 면면과 조용히 마주한다. 시간과 공간, 대상을 천천히 맴도는 시인의 발걸음에는 소리가 없다.

예를 들어 시 ‘4월 이야기’에서 시인은 “세계의 모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며/ 연인들은 작별한다./ 이제 정말 안녕이라는 듯이// 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전 생애를 낭비한다.// 어제는 빙하처럼 얼어 있던 눈이/ 녹아 흘러가고 있다./ 하양이 사라진 만큼의 대기를 나는 심호흡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힘을 뺀 시인의 언어에서 오히려 세상에 대한 시인의 대처법을 읽을 수 있다. 즉 ‘세상은 제멋대로 돌아가게 내버려두라,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 같은 태도는 세상의 지극한 슬픔 위에 얹혀 있다.

그래서 하 시인은 시 ‘손톱 이야기’에서 “하루의 열여섯 시간 대나무 잎을 씹는 판다의/ 두 손바닥처럼/ 세계는 여러 가지 슬픔 위에 성립되어 있다”고 적시한다. 또한 시 ‘카프카의 오후’에서 “밝아지면 아침 그리고/ 어두워지면 저녁// 나를 흉내 내고 있는 하루.”라고 읊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권혁웅씨는 “상징화, 기표화가 불가능한 지점이 세계의 모든 해변”이라며 “따라서 이 시인의 센티멘털은 세계의 모든 해변을 접수하려는 시적 전략”이라고 평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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