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고려대 경영대 교수·경영학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이들의 공통점은? 아마도 많은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킨 정보·기술(IT) 혁명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이른바 ‘엄청난 성공’을 이뤄낸 이들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대학을 중퇴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창업이 아닌 취업을 선택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 고졸 학력이 그들의 채용 과정에서, 또 입사했다 하더라도 직장생활 중에 핸디캡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더 나아가, 그들은 창업자로서 보여준 능력을 기업조직 내에서도 똑같이 발휘해 마침내 최고경영자(CEO)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이들이 창업으로 성공했던 터전인 미국보다, 한국의 교육열이 높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11년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39%로 OECD 평균인 30%를 웃돈다. 특히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63%로 2010년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고학력 사회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이러한 교육열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사교육 시장이 바로 그것이다. 한 조사자료를 보면 사교육 시장 규모가 34조원으로 국가 예산의 10%가 넘는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규모다.

이런 난맥 속에, 정부가 학력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 만들기에 나섰다니 반갑다. 고졸자 채용을 확대하고 대졸자와 차별을 없애는 ‘열린 고용’을 추진한다니 말이다. 중소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시작된 바람이 금융기관, 대기업으로 번지면서 가히 ‘고졸자 채용 열풍’이라 할 만하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학력 인플레이션이란 말이 이젠 너무 익숙한 세상이다. ‘무조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80%에 육박하는 대학진학률에 반영돼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대학진학률은 40~50%다. 심지어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71%가 직장 대신 대학을 선택했다니 고졸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어떤지 알 만하다. 대졸 학력이 그 사람의 경쟁력으로 평가되는 시대가 이미 지나가고 있는데도, 너도나도 대학에 진학하고 석사·박사 타이틀에 집착한다. 학력에 비례해 개인의 학식과 역량이 향상되고 있는지는 뒷전이다.

최근 KT그룹이 신입 사원의 35%를 고졸자로 뽑아 고졸(高卒) 신화를 이어가겠다고 한다. 대졸 채용 위주의 고용시장에서 신선한 발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KT는 현 임원의 약 10% 정도가 입사 때 고졸학력자라고 한다. 입사 후 학력의 장벽에 굴하지 않고 본인의 능력을 발휘한 것과 함께 학력보다는 능력 위주로 평가 시스템이 자리잡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 본다. 기업의 고졸자 채용 확대와 더불어 학벌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는 시스템 구축은 정말 중요하다. 이런 시스템이 갖춰질 때에만 ‘묻지마 진학’ 같은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잡스, 게이츠, 저커버그가 창업자가 아니라 직장인으로의 삶을 선택했다면? 비록 미국이라 할지라도, 아마도 고졸 학력으로는 CEO의 자리에 올라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잡스 사망 이후 우리는 한동안 ‘왜 한국에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업자가 나오지 않는가’라는 논의에 휩싸였었다. 그와 같은 창업자가 나오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가 고졸의 학력으로 입사했더라도, CEO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업 시스템 구축과 사회적인 인식 변화도 병행돼야 한다. KT와 같은 고졸 성공신화가 다른 기업들에서도 낯설지 않은 현상으로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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