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의 역사 / 필립 카곰 지음, 정주연 옮김 / 학고재

지난 1월 다보스포럼 행사장에 반나체 시위대가 등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3명이 상반신을 노출한 채 빈곤층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 행사장에 무단 진입하려다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거리에 수십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이 “누드는 범죄가 아니다!”고 외치며 나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가 비판의 화살을 받으며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으며, 개인 블로그에 성기 이미지를 올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이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나체 시위를 벌이는가. 나체 시위로 뭔가 보람있는 것을 이룰 수 있는가. 왜 어떤 종교는 나체를 비난하고 또 어떤 종교는 나체를 권하는가. 젖꼭지를 가린 재닛 잭슨의 가슴이 겨우 눈 깜짝할 동안 노출됐다는 이유로 CBS에 55만달러의 벌금을 매기는 나라인 미국에서 어떻게 ‘음경 연기자’들이 자신의 생식기를 주무르는 공연을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왜 벗은 몸에 대해 그토록 예민하게 되었을까. 영국 런던 출신 작가이자 심리학자이면서 나체주의자인 저자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된다.

저자는 사람들이 옷을 벗어 던지는 행위를 “우리가 알몸으로 세상에 왔으므로 신앙 속에 다시 태어나는 의식에서 옷으로 상징되는 보호막과 일상의 겉치레를 벗고 본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약 2000년간에 걸친 나체의 역사와 의미를 파고드는 이 책은 단순한 관음증적 엿보기가 아니라 금기에 대한 도전과 도발적인 나체 시위와 나체주의자의 행위를 둘러싼 문화사적, 철학적 의미를 천착하는 역작이다. 저자는 다양한 문화에서 일어나는 나체 행위를 종교, 정치, 대중문화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로 다가간다.

대부분의 종교가 사적인 공간을 제외하곤 나체를 용인하지 않을 것 같고, 나체로 참여하는 종교활동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을 법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고대 종교의 우상들이 빌렌도르프와 몰타의 ‘비너스’처럼 나체 여성의 모습이고, 그리스와 인도에서 나중에 발생한 종교 역시 남성의 나체 형상을 숭배했다. 남자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기독교 교리는 나체주의자들의 강력한 무기다.

나체에 대한 모순된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정치 영역이다. 유대교 문화에서 부자와 권력자들은 부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옷을 입고 장신구를 걸쳤지만 매춘부, 노예, 광인들은 벌거벗었다.

현대에도 권력자들은 방탄 리무진과 경호원이라는 보호 ‘의상’이 필요한 반면,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정치적 시위에 벌거벗은 몸을 이용했다. 저자는 “인간은 옷을 벗으면 공격받기 쉽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강해진다”며 “정치적 시위에 나체가 자주 이용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치인은 솔직하며 숨김없이 행동하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체로 선거 포스터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시위자들은 몸을 노출해 복합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도발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현 상태에 도전하고, 두렵지 않으며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명분에 힘을 싣는 것이다.

저자는 나체를 인간해방의 한 방편으로 격상시켜 흥미롭다. 지난 2000년 11월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팬티만 걸친 여성이 ‘관음증 버스’를 타고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 버스는 미국 수정헌법 1조 언론의 자유를 홍보하고자 미국 전역을 순회 중이었다. 버스에 탄 여성은 누군가가 옷을 입을지 벗을지를 결정할 권리는 그 자신에게 있지 정부나 대중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벌거벗은 행위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저자는 “나체에 대한 수치심은 나체가 본질적으로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나체가 우리 모두 똑같은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는 것을 인식하며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랄까. 벌거벗은 현장을 곁에서 실제 본 것처럼 느끼게 하는 140여 컷의 생생한 사진은 ‘나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나체가 되고 나체를 보여주는 것은 세상 속의 존재가 가지는 타고난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저자가 책을 쓰면서 가지게 됐다는 이 같은 확신은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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