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3선을 한 홍성우 전 의원. 지난 18일 제주 제주시 애월읍 자신의 ‘구멍가게’에서 화려했던 연기 생활과 3선 의원을 회상하며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예인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3선을 한 홍성우 전 의원. 지난 18일 제주 제주시 애월읍 자신의 ‘구멍가게’에서 화려했던 연기 생활과 3선 의원을 회상하며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 1호 홍성우 前의원 ‘홍성우’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40∼50대 이상의 도시사람들이다. 그는 TBC(동양방송) 출신의 유명 탤런트다. 하지만 케이블과 위성방송이 없었던 1970년대 난시청 지역이 많은 시골에서는 TBC 스타들을 아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고향이 경주인 기자도 1970년 초부터 흑백 TV를 접했지만 TV 화면에 스크레치가 생기는, 이른바 ‘비가 내리는 화면’의 MBC TV까지만 시청했을 뿐 TBC는 이런 화면조차도 잡히지 않아 홍성우, 고은아, 이순재가 탤런트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또 19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당선된 ‘연예인 출신 1호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서울 도봉과 노원 지역에서만 12대까지 내리 3선을 했다.

지난 4월 제주에서 이런 홍성우를 우연히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소주을 마시면서 잠시 들은 71년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아닌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비극이었다. 적어도 현재의 홍성우 인생을 보면.

그는 1988년 수천억 원의 재산을 부정축재 했다는 의혹을 받고 스스로 정계를 떠난 뒤 1992년 국민당 소속으로 14대 선거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제주도로 내려가 작은 구멍가게를 시작으로 타향 생활을 하고 있으나 머리가 빠지고 피부염을 앓을 정도로 찌든 가난으로 거의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지난 18일 제주로 다시 내려갔다. 제주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제주시에서 중문으로 연결되는 제2횡단도로를 달렸다. 한라산에서는 가장 높은 1100m 지점을 통과해 ‘1100도로’라 불리는 길을 따라 30분 가량을 달리니 그의 집이 나오고 그도 나왔다. ‘백바지’와 흰 T셔츠 차림이었다.

1941년생인 그는 올해 일흔을 넘긴 ‘노인’이었지만 건강검진 의사까지 놀라게 한 ‘30대 몸짱’이었다. 목소리도 여전히 카랑카랑했다. 몸짱의 비결을 물으니 밥은 거의 먹지 않은 채 매일 양파와 다시마, 생마늘 조각, 부추 등 채소만 먹는다고 했다.

―왜 제주로 내려왔나요.

“나름대로 정말 멋진 정치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서슬 퍼렇던 시기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세 대통령과 마주 앉아 대통령직선제를 건의할 만큼 잘나갔어요. 당시에는 입에서 꺼내기도 어려웠던 이야기를 세 대통령 모두에게 직접 했으니…. 또 옹기와 뚝배기 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을 가지고 ‘효도회 중앙회장’이라는 이름으로 1971년부터 1988년까지 매년 5월8일 서울지역 노인들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열었어요. 연예인 동료들이 경로잔치에 무료로 출연하면서 경로 잔치 참가 인원만 한해 20만 명이 넘을 만큼 대단했어요. 그런데 ‘홍성우가 이렇게 몇 십만 명씩 모아 크게 잔치를 하는 이유가 뭐냐’, ‘대통령 직선제를 자꾸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경로잔치에 다른 속셈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와 함께 ‘홍성우 죽여야 한다’는 괴문서까지 나돌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어느날 갑자기 내가 ‘대한병원으로 수백억, 수천억 원을 벌었다’는 사람으로 찍혔어요. 도봉구 수락산 자락의 닭장 집을 개조해 만든 집에서 서민들이 모금한 돈으로 선거 등록을 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당선된 홍성우가 수천억 원이 있다니…. 그래서 그만뒀어요. 이거 지워질 때까지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야겠다며 내려온 것이 제주도예요. 1996년 1월18일.”

그의 말대로 그는 12대 국회의원이었던 1988년 수천억 원의 재산을 부정축재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할아버지때부터 재력가였던 집안에서 ‘병원재벌’인 그의 사촌 형 홍성국 서울대 교수가 소유한 ‘대한병원’이 사실상 그의 재산이라는 의혹으로 부풀려졌다. 지하철을 타면 술취한 사람들이 “병원재벌 홍성우가 지하철을 타네”라는 비아냥이 들렸다. “도봉지역 주민들의 병원비 할인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내가 병원의 오너로 인식됐던 것 같다”는 그는 “왜 강하게 부인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슈퍼마켓을 하다 도둑을 맞았다고 하던데.

“(황금색 롤렉스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이 시계가 우리 집사람이 결혼 선물로 준건데, 내가 돈많은 사람인 줄 알았나봐요. 도둑이 들어왔다가 방을 다 뒤져도 뭐하나 나오지 않으니까 와이프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나가고. 도둑이 잡힌 뒤 파출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보니까 신랑 이름이 홍성우야. 주민등록증에 남편 이름이 있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홍성우가 제주에 사는 것이 알려지고….”

이후 홍성우는 친구들과 함께 민박집을 지어 1, 2년을 운영하다 팔고 옮아온 곳이 지금의 제주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산 123-1번지의 슈퍼와 민박을 같이하는 집이다.

“이 터를 보니까 뭐 하나(대통령) 나올 것처럼 힘이 보였어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농협에서 1800만 원을 빌려 이 땅 312평을 샀어요.”

땅은 샀지만 건물 올릴 돈이 없었다. 1억5000만 원을 빌려 건축을 시작했으나 턱없이 부족해 7000만 원, 또다시 8000만 원, 그러는 사이 투자 금액이 4억5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매년 25평씩 증축하다 보니 집 하나 짓는 데도 5년이나 걸렸다.

2008년 이곳으로 이사한 그는 “일곱 살 때부터 꿈꿔 온 대통령을 하려면 태양 정도는 먹는 남자가 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곳 민박집 이름을 아예 ‘태양을 먹고사는 남자’로 지었다. 거실에서 뒤를 돌아보면 한라산 정상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인근 마을 주민들의 공동 목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다.

하지만 홍성우는 이집에서 ‘태양’을 먹고 살기도 전에 쫓겨나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해발 600m 지역이라 한라산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민박집이지만 외딴 곳을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20㎡ 남짓한 구멍가게에서 ‘한라산 소주’와 ‘새우깡’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그의 하루벌이는 3만원 정도가 고작이었다.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드는 상황이니 은행돈 이자 마련은 엄두도 못냈다.

“자동차 기름도 외상으로 넣었어요. 주유소 외상 값만 413만원, 지금도 있어. 손자가 학교를 다니니 시내버스는 없고, 학교는 데려가야 하고…. 주유소 가는 게 도살장에 가는 거 같아요. 방 보일러 가동도 못하고 사는데 누가 석유 난로를 하나 갔다 줬어요. 근데 2만5000원이 있어야 석유 한통을 사지. 가난, 빈궁은 정말….”

그는 말을 하다 몇 번씩이나 헛기침을 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이집도 경매에 넘어 가요. 7월이면 나가야죠. 집을 되찾으려면 지금 4억5000만 원은 있어야 하는데…. 경매에 넘어가기 전 4억7000만 원에 내놓았어요. 갚아야 할 빚에다 컨테이너 두개를 살려고요. 부엌 하나 딸린 컨테이너가 800만 원 한다고 해요. 살림이 워낙 많으니까 두개는 있어야 하고.”

―국회의원 시절 뇌물 유혹은 없었나요.

“많았죠. 그 중에 하나만 이야기하면, A그룹이 있었어요. 사촌 형 홍 교수와 동기동창인 이모 씨가 회장인데 그가 홍 교수를 통해 도봉구 창동의 군사보호지역에 1만2000평의 땅이 있는데 그게 풀리도록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부탁이 왔어요. ‘그곳에 공장을 세운 뒤 내가 지역(도봉구) 사람을 추천해서 보내면 심사해서 고용하는 조건이라면 내가 부탁해 보겠다고 했어요. 결국 당시 이기백 국방부 장관에게 설명을 하고 민원을 해결한 뒤 A그룹 이 회장과 신라호텔 중국식당에서 만났어요. 그가 007가방을 꺼내 여는데 100만원짜리 수표를 묶은 1억원 뭉치가 보이는 거라. 그걸 보는 순간 ‘이 친구가 나를 죽이는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고 수표 뭉치 하나를 움켜쥐고 비틀면서 ‘야! 내가 너하고 약속할 때 도봉구 사람을 취직시켜달라 그랬지. 돈 달라 그랬냐’며 돈을 던져버리고는 나왔지요.”

의원 시절 집에 있던 어머니에게도 계란은 5줄 이상, 과일도 1박스 이상은 절대로 받지 말고 현금도 5만원 넘어가면 절대 받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며 최소 7억~8억원은 될 것 같은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런 홍성우에게 제주 강정 민·군 복합항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치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제주도민이기에 해군기지 논란에 대해 물었다.

“(민·군 복합항을) 계속 추진해야지요. 국가가 흔들흔들하면 안돼. 대한민국이 가는 길을 누가 막아? 국가가 가는 길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 그거는 안 되는 거야. 잘못된 거지.”

3선의원 출신인 그는 인터뷰 내내 빈곤과 정치 이야기만 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등 당시 정치인들과의 에피소드를 꺼내며 자신의 과거를 무용담으로 전했다. 그래서 코앞으로 다가온 19대 국회 개원과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금은 어떤 정치인이 필요한지를 물어봤다.

“지금 정치인이 없지 않나요? 정치라는 게 국가를 잘 조율하고 국민의 희망이 무엇인지, 국민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정치를 해야하는데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진보를 가장한 종북세력이 난동질을 하고, 남남갈등이 심각하게 되고…. 험난한 세상을 끌고 나가려면 결국은 원칙과 상식, 순리와 합리를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드골 같은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국가를 배신하고, 혐오하고, 팔아먹은 사람들은 모두 프랑스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한 샤를 드골처럼 대한민국을 배신한 자, 전복을 꾀하는 자는 용서하지 말고 원칙대로, 법대로 해야 한다고 법치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언비어라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죽일 줄 몰랐어요. 고민을 많이 하면 머리털이 빠지는데 내가 세번이나 머리털이 뭉텅뭉텅 빠졌어요. 앞으로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정말 너무 아파, 나 혼자 아프면 괜찮은데 나를 쳐다보는 많은 분들, 그리고 무허가 집을 팔아 돈을 모아 주면서 홍성우가 잘되기를 기대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소주 한잔 대접하지 못한 게 지금까지도 마음이 아파….”

제주 = 한강우 차장(사회부) hanga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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