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시범단원들이 휴일인 지난 5월2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국체육대 승리관에서 사범의 구령에 맞춰 손목막기 동작을 하고 있다.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시범단원들이 휴일인 지난 5월2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국체육대 승리관에서 사범의 구령에 맞춰 손목막기 동작을 하고 있다.
사랑·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161> -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시범단지난 5월20일 오후 2시. 일요일이던 이날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국체육대 내 승리관 1층, 태권도장에는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에는 청각 장애인을 비롯, 다운증후군 등 지적장애인,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등 13명이 태권도복을 입고 사범의 구령에 맞춰 막기 동작과 찌르기 등 태권도 기본 동작을 일사불란하게 맞추는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들의 연습은 이후 3시간 후 끝났다. 중간 중간에 휴식시간이 주어지자 매트 위로 드러눕기도 하고, 바쁜 호흡을 가다듬는 단원들도 있었다. 일부는 이마와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서로 닦아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지난 5월3일 정식으로 출범한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소속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시범단’이다.

시범단은 한 달여의 훈련 덕에 지난 5월26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경기장 등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농아인경기 대회에서 공식 데뷔전을 성공리에 치렀다. 시범단은 개막식 공식 행사에서 20분 동안 그동안 갈고 닦은 태권도의 모든 것을 보여준 것. 시범단은 품새와 기본격파, 기술격파, 태권 체조 등 8개 파트로 나눠 대회에 참가하는 아시아 30개국 2500여 명의 선수를 비롯, 수많은 관중들 앞에 첫선을 보였다.

정재규(62·한체대 교수) 시범단 단장은 “단원들 대부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태권도복을 입고 있을 때라고 생각할 만큼 태권도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정 단장은 또 “단원들은 학교나 태권도장에서 연습할 때와는 달리 시범단원이 되고 나서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다”면서 “단원이 되고부터 장애인이지만 국가대표가 됐다는 사실에 남들보다 뒤처질 수 없다며 열심히 노력하는 편”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전체 시범단은 단장,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40명이지만 이날 연습에 참가한 것은 12명뿐이었다. 단원 대부분이 장애인이다 보니 쉽게 모일 수가 없어 일요일에만 모였던 것. 이들은 앞으로도 소속 학교나 체육관에서 개인 연습을 한 뒤 주 1회 정도 단체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시범단에서 손날 격파와 팔꿈치 격파를 맡은 양기성(26) 씨는 고교시절 태권도 유망주였지만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척추를 다쳐 지체장애인이 됐다. 양 씨는 사고 후 좌절의 삶을 살았다. 양 씨는 “다시 태권도를 하고 싶어 시범단에 지원했고, 사고 후 7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태권도복을 입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시범단에는 이번 아·태농아대회에서 태권도 겨루기 부문 국가대표 선수들도 포함돼 있다.

시범단원 김희열(32) 씨는 지적장애인과 다운증후군을 안고 사는 장애인이다. 김 씨는 집이 있는 서울 중랑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매일 한체대에서 태권도 연습을 한다. 태권도 공인 5단인 그는 격파도 하고 겨루기도 하고, 시범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12세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던 양 씨는 중간에 다른 운동을 했지만 태권도를 그만둘 때마다 몸이 아팠고 태권도를 다시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아픔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수영이나 헬스 등 다른 운동을 하면 쉬 피로감을 느끼지만 태권도만 하면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은 장애인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게 꿈이라는 김씨는 “남들 앞에서 (내가)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라며 그래서 시범단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범단은 발족은 했지만 아직 여러 제약이 많다. 급하게 만들다 보니, 연습장소와 훈련에 필요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체대의 협조로 빌렸지만 단원들에게 식사 비용을 주지 못해 이날처럼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 오후 2시부터 훈련시간을 잡기도 했다.

이들 시범단원은 사실 그동안 각 학교에서 태권도를 배웠던 유경험자들이다. 김동민(38) 시범단 감독은 “시범단 소속 장애인 선수들이 경기 남양주, 강원 춘천 등 각지에 흩어져 있다 보니 함께 모여 훈련하기가 어려운 편”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그런 만큼 각 학교별로 연습을 한 뒤 1주일에 한 차례씩 모여 그동안의 기량을 점검하고, 호흡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그러나 “장애를 갖고 있지만 모두가 자원자들로 구성돼 있어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가 넘쳐 연습도 아주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시범단은 대한장애인스포츠협회와 대한장애인태권도연맹이 주축이 돼 국기인 태권도가 장애인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장애인들로 구성된 태권도 국가대표 시범단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해, 내년부터 예산에 반영키로 약속했다. 시범단은 인원 구성을 마친 뒤 하반기부터는 국기원 시범단처럼 해외순회 공연을 하고 태권도를 알리는 홍보 대사로 활동할 계획도 갖고 있다.

지체장애인 김승재(37) 씨는 “태권도복을 입고 땀을 흘릴 때면 스스로 장애를 잊는 것 같다”면서 “관중들 앞에서 시범을 보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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