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입문자들의 필청곡, TV보다 라이브 무대 고집혼성그룹 ‘해바라기’는 이정선, 이주호, 한영애, 김영미 등 4인조로 1977년 출발했다. 뛰어난 음악성과 화음으로 포크계의 ‘신문물’을 선사했던 이들은 그러나 이주호가 군에 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해체 수순에 들어간 해바라기는 제대한 이주호가 다시 그룹명을 자신의 듀오에 쓰면서 부활했다.

이주호와 유익종으로 새로 결성된 포크 듀오 해바라기는 1집 수록곡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 곡은 당시 주류에서 쓰던 기본 코드와 달리 재즈에서 사용하던 세븐 코드가 들어간 CM7으로 시작돼 제작자가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선율”이라며 발매 자체를 꺼렸던 곡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념 음반식으로 200장만 찍은 이 음반은 그러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대중의 심장을 낚아챘다. 당시 음반 한 장이 5000원이었는데, 이 음반은 10만 원에 거래될 정도였다. 이주호는 “당시 주류 포크가 동요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어서 우리는 음악을 발전시키고 싶어 기존에 쓰지 않던 코드를 많이 썼다”며 “지금도 나만 아는 코드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해바라기는 이주호를 주축으로 유익종, 이광준, 심명기, 강성운 등 여러 멤버가 교체되는 혼란 속에서도 주옥같은 히트곡을 발표해 질긴 생명력을 보존해 왔다.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의 시’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너’ ‘어서 말을 해’ ‘마음 깊은 곳에’ ‘시들은 꽃’ 등 발표하는 음반 수록곡 대부분이 기타를 배우던 청년들의 필청곡으로 자리잡으면서 인기 그룹으로 떠올랐다. 해바라기는 그러나 TV보다 무대에서 얼굴을 더 많이 비칠 정도로 라이브 무대형 뮤지션을 고집했다. 따뜻하면서 진실함이 느껴지는 음색과 하모니, 단순히 반주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닌 솔로 연주를 넣어 기타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해 준 그들의 음악은 1970, 1980년대를 넘어 2000년대에도 느리지만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

관련기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