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충주사범 병설 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사범학교를 마치면 국민학교 교사로 발령 받을 수 있었으나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신경림은 풍금을 칠 줄 몰라 끝내 사범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1952년 충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55년 동국대 영문과에 입학, 대학 2학년인 이듬해 시 ‘낮달’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57년 낙향해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1965년 서울로 올라왔다. 1967년 동국대 영문과를 서른둘의 나이에 뒤늦게 졸업했다. 1973년 첫 시집 ‘농무’를 냈으며 이듬해 증보판을, 1975년엔 ‘창비시선’ 1권으로 재출간했다. 모더니즘이 지배적이었던 시단에서 ‘농무’는 시인들이나 독자들 모두에게 새로운 충격을 던졌다.
신 시인의 작품세계는 주로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농민의 한과 울분을 노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전통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민중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 왔다. 그의 시는 농민들 삶의 현장을 그리고 있지만, 인간 삶의 보편적인 쓸쓸함과 고적함을 주된 분위기로 하고 있다. 아울러 농민의 고달픔을 다루면서도 항상 따뜻하고 잔잔한 감정을 기저에 깔고 있다.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 1990년 제2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1991년 민족문학작가회 회장과 민족예술인총연합회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시집으로는 ‘농무’를 비롯,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가난한 사랑 노래’(1988), ‘길’(1990), ‘쓰러진 자의 꿈’(1993), ‘갈대’(1996), ‘목계장터’(1999), ‘뿔’(2002), ‘낙타’(2008) 등이 있고, 평론에 ‘농촌 현실과 농민 문학’(1972),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2), ‘역사와 현실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시’(1984), ‘민요기행’(1985), ‘우리 시의 이해’(198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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