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채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 지난 2008년 마흔두 살의 나이로 뒤늦게 등단한 양진채 작가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창작집 ‘푸른 유리 심장’(문학과지성)이다. 등단작 ‘나스카 라인’을 비롯,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보여준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찌르는 듯한 외로움을 감내하며 좀 더 깊고 단단해진 고독을 안고 살아간다.

수록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은 다양하다. 우체국 직원, 백화점 점원, 과외 선생처럼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예민한 이들은 극도의 외로움을 겪는다. 행동반경이 좁고,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는 이들에게는 스팸메일마저 잘 오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없거나 그나마 있더라도 자기 자신이 보내는 메시지만 간혹 도착할 뿐이다. 속으로만 파고들어 외로움인 줄도 모르게 된 감정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단편 ‘나스카 라인’의 화자(話者)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자주 그 갈피에 숨은 의미를 해독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말을 이해했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가끔 옹알이할 때가 제일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몽돌 같은 그 옹알거림을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아들었을 테니까. 말 대신 옹알거림으로, 눈빛으로 얘기할 순 없는 건가?”

특히 수록작 ‘플러그 꽂는 시간’은 이 같은 인간 고독의 절정을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독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유품 정리를 해주는 회사의 직원 P가 주인공이다.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도 떨어져 사는 P의 업무는 고인 친인척들의 의뢰를 받고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시신 인수는 물론, 고인이 죽은 장소에 접근하는 것조차 꺼린다. P는 이렇게 증언한다.

“일을 의뢰받고 가보면 오랫동안 혼자 살다 죽은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죽은 며칠 뒤 발견돼 부패가 진행된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오십대 사망자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혼자였다.”

그러나 홀로 죽은 자의 뒷수습을 해주는 P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밖에 없는 딸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소통의 전부인 P는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과의 영상통화를 되풀이해 듣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떠다니는 냄새, 즉 시취(屍臭)를 맡을 뿐이다. 그야말로 철저히 혼자된 자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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