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대 로비조직 ‘전미총기협회(NRA)’ ‘용서받지 못할 자들인가, 시민 권리의 수호자들인가.’
검은 뿔테안경에 은발 머리의 데이비드 킨 전미총기협회(NRA) 회장은 입술을 굳게 물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포괄적인 총기규제 종합대책을 발표한 16일, 킨 회장은 백악관을 향한 ‘전투(battle)’를 맹세했다. 그의 앞에는 미국의 상징인 흰머리 독수리가 서부 개척시대에서 썼을 법한 나무 개머리판 라이플 두 정을 부리로 움켜쥐고 날개를 퍼덕였다. 독수리는 절대로 총을 뺏기지 않겠다는 듯이 매서운 눈빛으로 사방을 노려봤다.
코네티컷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이 ‘NRA’에 집중되고 있다. ‘악(惡)의 방문’으로 일컬어지는 샌디훅 사건에서 어린이 20명이 희생됐지만 NRA는 여전히 총기소유 권리를 외치고 있다.
킨 회장은 “대통령이 정말로 우리들과 전쟁을 원한다면, 모든 규제를 무효로 만들어 버리겠다”면서 “NRA는 전쟁에 나갈 것이고,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백악관과의 전쟁을 선언한 킨 회장의 뒤에는 430만 명의 NRA 회원들이 버티고 있다. NRA는 ‘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약자. 엄밀하게 따지면 탄환을 강선에 물려 회전시켜 규칙적 탄도를 갖게 하는 원거리 라이플 협회다. 하지만 지금은 권총을 포함한 모든 총기 소유자들의 이익과 권리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 NRA는 지난 2001년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로비단체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정치권에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 회원들은 총기규제에 찬성하는 의원들을 ‘표적’으로 정해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거나 선거 때면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벌여 무력을 과시한다. 매년 의원들을 평가해 ‘우호 등급’도 매기고 있다.
NRA는 막대한 로비자금을 바탕으로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로비자금은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 등으로 충당된다. 1년 회비는 30달러로 430만 명의 회원수를 감안하면 어림잡아도 매년 1억2900만 달러(약 1366억 원)가 걷힌다. 여기에 기부금까지 합할 경우 NRA가 한 해에 주무르는 돈은 2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NRA 회원 총기상은 거래마다 1달러를 기부한다. 총기산업 종사자들이 정부에 내는 세금만 연간 40억 달러가 넘을 정도다. NRA는 2000년 대선에서는 총기규제법안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에 대해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벌였다. 2008년 대선에서도 NRA는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 반대 광고에 1500만 달러를 퍼부었다.
1871년 11월 ‘육해군 저널’의 발행인 윌리엄 처치와 조지 윈게이트 장군에 의해 설립된 NRA의 목적은 원래 사격술 향상이었다. 남북전쟁에서 국민들의 총기 사용 미숙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면서 올바른 소총 사용법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초대회장은 남북전쟁에서 활약했던 앰브로시 번사이드 장군으로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사격대회를 열기도 했으며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참가시켰다.
미국 대통령 중에는 율리시스 그랜트(18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윌리엄 태프트(27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 존 F 케네디(35대), 리처드 닉슨(37대), 로널드 레이건(40대), 조지 H W 부시(41대) 대통령 등 8명이 NRA 회원이었다. 2008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은 NRA 평생회원이다.
미국에서 NRA의 사상적 뿌리는 역사와 관련이 깊다.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뉴잉글랜드에 발을 디딘 이후 총은 생명과 다를 바 없었다. 인디언의 습격과 곰, 늑대 등 맹수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총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는 군인과 일반인들이 따로 없었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서부 개척시대에도 총은 필수품이었다. 미국의 이 같은 역사는 “모든 인간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는 NRA의 근본철학으로 이어졌다. 1791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2조의 ‘국민의 무기 소지권’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금 미국 사회는 2억5000여만 정이 넘는 총기가 범람해 상처가 곪아 터지고 있는 상태다. 2012년 한 해에만 13건의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고 올해도 총기난사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네티컷주 샌디훅, 콜로라도주 오로라 극장 등 대형 사건에서는 어김없이 AR-15, 부시마스터 같은 군용 공격용 총기가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형 총기사건 이후 항상 총기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졌고, 실제로 일부는 의회에서 법안 통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NRA는 시간이 지나면 막강한 로비력을 동원해 법률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놨다. 꽃다운 어린이들이 희생당한 이번만큼은 다르다고 하지만 ‘병이 너무 깊어 치료가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
검은 뿔테안경에 은발 머리의 데이비드 킨 전미총기협회(NRA) 회장은 입술을 굳게 물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포괄적인 총기규제 종합대책을 발표한 16일, 킨 회장은 백악관을 향한 ‘전투(battle)’를 맹세했다. 그의 앞에는 미국의 상징인 흰머리 독수리가 서부 개척시대에서 썼을 법한 나무 개머리판 라이플 두 정을 부리로 움켜쥐고 날개를 퍼덕였다. 독수리는 절대로 총을 뺏기지 않겠다는 듯이 매서운 눈빛으로 사방을 노려봤다.
코네티컷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이 ‘NRA’에 집중되고 있다. ‘악(惡)의 방문’으로 일컬어지는 샌디훅 사건에서 어린이 20명이 희생됐지만 NRA는 여전히 총기소유 권리를 외치고 있다.
킨 회장은 “대통령이 정말로 우리들과 전쟁을 원한다면, 모든 규제를 무효로 만들어 버리겠다”면서 “NRA는 전쟁에 나갈 것이고,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백악관과의 전쟁을 선언한 킨 회장의 뒤에는 430만 명의 NRA 회원들이 버티고 있다. NRA는 ‘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약자. 엄밀하게 따지면 탄환을 강선에 물려 회전시켜 규칙적 탄도를 갖게 하는 원거리 라이플 협회다. 하지만 지금은 권총을 포함한 모든 총기 소유자들의 이익과 권리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 NRA는 지난 2001년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로비단체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정치권에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 회원들은 총기규제에 찬성하는 의원들을 ‘표적’으로 정해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거나 선거 때면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벌여 무력을 과시한다. 매년 의원들을 평가해 ‘우호 등급’도 매기고 있다.
NRA는 막대한 로비자금을 바탕으로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로비자금은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 등으로 충당된다. 1년 회비는 30달러로 430만 명의 회원수를 감안하면 어림잡아도 매년 1억2900만 달러(약 1366억 원)가 걷힌다. 여기에 기부금까지 합할 경우 NRA가 한 해에 주무르는 돈은 2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NRA 회원 총기상은 거래마다 1달러를 기부한다. 총기산업 종사자들이 정부에 내는 세금만 연간 40억 달러가 넘을 정도다. NRA는 2000년 대선에서는 총기규제법안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에 대해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벌였다. 2008년 대선에서도 NRA는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 반대 광고에 1500만 달러를 퍼부었다.
1871년 11월 ‘육해군 저널’의 발행인 윌리엄 처치와 조지 윈게이트 장군에 의해 설립된 NRA의 목적은 원래 사격술 향상이었다. 남북전쟁에서 국민들의 총기 사용 미숙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면서 올바른 소총 사용법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초대회장은 남북전쟁에서 활약했던 앰브로시 번사이드 장군으로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사격대회를 열기도 했으며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참가시켰다.
미국 대통령 중에는 율리시스 그랜트(18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윌리엄 태프트(27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 존 F 케네디(35대), 리처드 닉슨(37대), 로널드 레이건(40대), 조지 H W 부시(41대) 대통령 등 8명이 NRA 회원이었다. 2008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은 NRA 평생회원이다.
미국에서 NRA의 사상적 뿌리는 역사와 관련이 깊다.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뉴잉글랜드에 발을 디딘 이후 총은 생명과 다를 바 없었다. 인디언의 습격과 곰, 늑대 등 맹수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총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는 군인과 일반인들이 따로 없었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서부 개척시대에도 총은 필수품이었다. 미국의 이 같은 역사는 “모든 인간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는 NRA의 근본철학으로 이어졌다. 1791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2조의 ‘국민의 무기 소지권’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금 미국 사회는 2억5000여만 정이 넘는 총기가 범람해 상처가 곪아 터지고 있는 상태다. 2012년 한 해에만 13건의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고 올해도 총기난사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네티컷주 샌디훅, 콜로라도주 오로라 극장 등 대형 사건에서는 어김없이 AR-15, 부시마스터 같은 군용 공격용 총기가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형 총기사건 이후 항상 총기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졌고, 실제로 일부는 의회에서 법안 통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NRA는 시간이 지나면 막강한 로비력을 동원해 법률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놨다. 꽃다운 어린이들이 희생당한 이번만큼은 다르다고 하지만 ‘병이 너무 깊어 치료가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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