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락 변호사신용락(53·법무법인 원·사진) 변호사는 골프가 좋아 한때 변호사 생활을 접었다. 미국 골프 유학 2년 만에 골프 전문가로 변신한 그는 ‘레슨프로’가 됐고, 골프장 대표이사까지 역임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골프를 처음 배운 것은 1994년 수원지법 판사 시절이다. 당시 회사정리부(현 파산부) 판사였던 그는 부실기업 30여 곳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이들 기업을 관리하면서 기업인들을 자주 만나 현황을 파악해야 했다. 선배 판사가 골프를 치면 이들 기업인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면서 골프를 적극 권했다. 그는 형이 쓰던 낡은 클럽을 물려받아 연습장에 나갔다. ‘골프 8학군’이던 수원은 골프장과 연습장도 많았다. 그는 경기 용인의 골드골프장에서 골프를 배운 지 한 달 만에 첫 라운드를 했고, 네 번째 라운드에서 100타를 깼다. 하지만 이후 다시 100타를 넘기기 일쑤였다. 1년쯤 지나 안정적인 90대 스코어에 진입했다. 1996년 용인시 법원이 생겨 초대 판사로 근무하면서 골프의 참맛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인근 3군사령부에 군인체력단련시설인 9홀짜리 골프장이 있었는데, 그는 시즌 때면 새벽에 라운드를 돈 뒤 출근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그러다 1998년 6월 그는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냈고 수원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당시 간(肝)이 안 좋았던 그는 하루 10시간을 자도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이때 먼저 개업한 동기생들이 새벽 골프 모임을 만들었고, 처음엔 마지못해 골프장에 나갔으나 이후 건강도 다시 회복했다. 골프에 불이 붙은 그는 2002년 중대 결심을 했다. 앞으로 골프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가 필요한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접은 것이다.

그해 4월 좋아하는 골프도 즐기고 이 분야 전문가로 변신하겠다며 골프 유학을 떠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골프아카데미(SDGA)에서 2년 가까이 골프만 접했다. SDGA는 골프를 전문으로 하는 2년제 취업학교였다. 4학기를 마치는 동안 판사와 변호사로 모은 돈을 모두 썼다. 그는 주 3회 라운드를 포함해 골프 역사, 매니지먼트, 운동생리학, 클럽 피팅, 티칭 등 골프의 모든 것을 배웠다. 이 학교는 졸업생만 2만 명이 넘었고 그들 대부분 골프 관련 업계에 종사했다.

그는 자신처럼 외도를 한 사람이 의외로 많은 데 놀랐다. 골프가 좋아 유학 온 대기업 임원, 의사, 장교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자연스레 어울렸고, 졸업 후에도 ‘샌디회’라는 골프모임을 통해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골프룰에 관한 판례집을 번역하면서 법학도로서 번역 오류를 여러 곳에서 발견해 대한골프협회에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변호사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골프장 관련 소송을 여러 건 맡았다. 그의 특이한 경력이 알려지자 다른 아마추어 골퍼 여러 명을 레슨하기도 했다. 한번은 골프장의 한 오너가 레슨을 부탁해 몇 달 동안 스윙코치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이 오너는 그동안 여러 프로에게서 레슨을 받았지만 워낙 독특한 스윙이어서 별 효과를 보질 못해 신 변호사를 찾았던 것. 스스로 연습한 다음 1주일 후 다시 레슨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 그의 지도로 이 오너는 10년 이상 고질병 같았던 잘못된 스윙을 시원스레 고쳤다.

신 변호사는 “국내 프로들은 대개 자신의 스윙 기준을 아마추어에게 주입하려는 경향이 있어, 아마추어들이 오랫동안 잘못 고착화된 스윙을 고치기 힘들다”고 말한다. 당사자에게 맞는 방법을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방식이 먹힌 것이다. 그는 이 오너와의 인연으로 2004년 경기 이천의 뉴스프링빌 골프장 대표가 됐다. 당시 그 골프장은 클럽하우스를 옮기고 코스 증설과 리노베이션을 하던 터라 어수선했다. 사정상 1년도 채 안 돼 골프장을 그만뒀지만, 이론으로만 알던 골프장 업무를 많이 배웠다.

다시 변호사로 돌아온 그는 2008년까지 경기 의정부에서 친구와 변호사 사무실을 공동 운영했다. 일이 많아 한 달에 한 번 필드에 나가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동업하던 변호사가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고군분투했고, 그러다 우울증 증세까지 생겼다. 간혹 골프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흥미를 잃기도 했다. 그래서 최근엔 골프 외에 암벽등반을 새로운 취미생활로 즐긴다.

2009년 서울로 돌아온 그는 지금의 법무법인에 동참하면서 변호사만 100명 가까운 ‘대형로펌’의 초석을 만들었다. 골프 관련 사건은 그에게 우선 배당될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또 2005년부터 사법연수원에서 골프 관련 강의를 맡고 있다. 8년째 ‘골프회원권 계약’ 과목을 강의해오고 있다. 체육시설법 개정 때는 골프장이 경매로 제3자에게 양수·양도될 경우 회원을 승계하도록 입법과정에서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의 베스트스코어는 1오버파 73타다. 골프 유학 시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나비스코챔피언이 열리는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골프장에서 ‘샌디회’ 모임 때 73타를 기록한 게 베스트스코어다. 한국에서는 골드골프장에서 1오버파를 친 적이 있다. 전성기 때만큼 스코어가 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유학시절 배웠던 스윙을 잊지 않은 덕에 드라이버 비거리는 250m 이상 날 정도로 장타자다.

그는 골프를 “운동과 유희를 갖추고, 멘털까지 필요한 좋은 게임이며,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평생운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골프 대중화 여건은 마련됐지만, 회원권 시세 하락으로 향후 회원과 골프장 간 마찰이 많이 생겨 골프 관련 법적 다툼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글 = 최명식 기자 mschoi@, 사진 =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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