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정부조직 관련 법안이 한 달 가까이 국회에서 표류함에 따라, 새 정부가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한다. 이에 따라 민생법안도 연쇄적으로 미뤄지고 있다. 국회의 의사결정이 늦어짐에 따라 모든 정부 기능이 정지됐다.

과거엔 국회의 의사결정 과정은 과반수(過半數) 제도였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포퓰리즘 정책을 경쟁적으로 생산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했지만, 과반수의 의사결정 체계를 60% 다수체제로 국회선진화법(法)을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서 통과시켰다. 여야가 합의했다는 측면에선 좋은 결정으로 보였지만 이 법은 결과적으로 선진화의 장애법이 됐다.

사회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인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한다면 한 건의 안건도 통과시키지 못할 것이다. 즉, 의사결정비용(decision making cost)이 무한대로 갈 것이다. 따라서 의사결정 방법으로 다수의 비중이 클수록 그 비용(費用)은 점차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계층은 사회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의사결정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소외계층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 계층이 많을수록 사회에 주는 나쁜 영향은 커지게 된다. 이를 ‘외부비용(external cost)’이라 한다.

따라서 집단 의사결정을 하는 데는 두 가지 형태의 비용이 발생한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다수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의사결정비용은 증가하는 반면 외부비용은 줄어들게 된다. 즉, 지금까지 과반수 원칙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을 60%로 바꿈에 따라 외부비용은 줄어들게 되지만 의사결정비용은 더 높아지게 된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의사결정 비중은 의사결정비용과 외부비용을 합한 전체 비용이 가장 낮은 수준이어야 한다. 따라서 국회선진화법이 전체 비용을 낮췄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 주재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져 결과적으로 전체 사회비용을 오히려 더 높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총선 이전에 각 당이 몇 석이나 차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만장일치로 통과시킬 수 있다. 즉, ‘불확실의 장막(veil of uncertainty)’ 아래서는 얼마든지 모두가 찬성하는 의사결정 원칙을 만들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이 아닌 향후 논의할 수많은 안건에 대한 의사결정 원칙은 구체적인 안건을 결정하는 과정과는 별개 문제다. 만장일치로 통과한 의사결정 원칙에 따라 국회는 개별 안건에 대해 구체적 정책 방향을 결정하면 된다. 즉, 의사결정 원칙에 따라 순조롭게 기능하는 국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선진화법의 ‘60% 집단 의사결정 원칙’은 총선 결과가 나온 이후에 처리됐다.

이론적으로는, 이미 전체 의석에서 차지하는 개별 정당의 의석수가 결정된 뒤에는 의사결정 원칙에 대한 규정은 절대 통과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수당은 특정 정책을 의도하는 대로 통과시킬 수 없지만 국회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킬 수 있다. 과반수인 여당은 60%에 미치지 못하므로 다수당이란 명목뿐이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국회는 식물국회로 전락했다. 정치 소외계층의 외부비용에 너무 비중을 둠에 따라, 오히려 의사결정비용이 급격히 높아짐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반수를 확보한 새누리당이 이런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미래 지향적 행동이 아니었다.

정치적 소수계층을 보듬는 따뜻한 마음도 중요하지만, 국회에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개방화 시대에 대한민국이 선진화할 수 있는 개혁을 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외부비용을 줄이는 대신 의사결정비용을 엄청나게 높임으로써 국회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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