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학/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 한국규제학회 이사

세계 시장(市場)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의 경쟁 상대인 일본 기업들은 아베 신조 정권의 인위적인 엔저(円低) 정책에 힘입어 공세를 높여가는 중인데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경제(經濟)성장은 예전만 못해지면서 중국발 쇼크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항상 그래 왔지만 우리 기업들이 헤쳐 나가야 하는 작금의 경제 환경이 결코 녹록지 않다. 코닥, 모토로라, 노키아 사례에서 보듯이 경쟁이 국경을 벗어나 치열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환경에서는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라 해도 잠시 방심하면 하루아침에 존재감을 잃을 수 있다. 시장의 흐름, 기술의 진화, 경쟁자의 전략을 제대로 헤아리고 열심히 준비하고 응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지금의 경쟁 환경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기업들은 시장 동향보다도 정부의 정책과 국회의 입법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불안해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경제·노동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는 입법 활동이 넘쳐남에 따라 시장 리스크보다 규제 리스크가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경제단체는 지난 26일 과잉 입법을 우려하는 공동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지금은 경제 전쟁의 시대인데, 이러한 때에 자국의 규제정책 동향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시장이 아닌 정치와 정부에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은 군인이 전쟁의 와중에 전방이 아닌 후방을 보고 경계를 서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과 중국, 심지어는 미국의 기업들도 자국 정부의 성원을 등에 업고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규제 틀에 묶이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인 것이다.

물론 정부와 시장의 역할은 다르고, 필요한 경우 정부는 시장 제도를 바꾸고 기업 행태에 규제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 개입은 자발적인 시장 교환의 활성화를 통해 경제의 건실한 발전에 기여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갖는다. 지금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명분으로 쏟아내는 각종 규제안들은 이러한 목적에 충실한가? 당초 경제에 민주화를 접목한 것부터 어색하고 억지스러웠다. 경제민주화의 개념과 지향성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규제 법안들 또한 지향성 없이 규제를 위한 규제 수단으로서 자기 증식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설령 경제민주화가 필요해도 규제 법안은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지켰으면 한다.

첫째, 국제 정합성의 원칙이다. 경제활동의 세계화와 우리 경제의 높은 개방성을 감안할 때 규제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로 시장과 기업을 통제하면 영토 안의 경제활동은 위축되거나 해외로 누수(漏水)될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국가경쟁력지수는 왜 기업활동 중심으로 구성되고, 세계은행은 왜 기업환경지수를 평가해 국가별로 순위를 매기고 있겠는가? 기업집단은 세계 도처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집단에 독특한 규제의 덫을 씌우면 결과적으로 외국의 기업집단을 유리하게 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둘째, 소비자 우선의 원칙이다.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를 위한 규제안이 바람직하고 이와 관련 제도 보완의 필요성도 인정된다. 개발경제 시대가 아니라, 개방경제의 시대에 특정 산업이나 생산자를 위해 소비자 희생을 강요하는 규제는 실효성 없고 부작용만 키우게 된다.

셋째, 보편성 원칙이다. 규제는 보편적 시장규칙으로 작용해야 한다. 특정 계층을 위한 차별 규제는 결국 이익집단의 논리에 휘둘리고, 시장을 정치화하는 문제를 낳는다. 이렇게 너도나도 정치적 해결을 모색한다면 정치적 인기는 올라가겠지만 시장과 경제는 혼란 속에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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