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9년째 ‘초등교 강사’ 미국인, 알고보니…전북 지역의 대학교와 초등학교, 학원 등에서 원어민 강사로 활동해 온 미국인 A(44) 씨는 평소 술에 취하면 다른 원어민 강사들에게 영어로 “사실 나는 성폭행 수배자”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동료 강사들은 A 씨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 욱하는 성질이 있지만 9년째 한국에서 유능한 원어민 강사로 생활하고 있는 A 씨가 12세 이하 아동성폭행 혐의로 미연방수사국(FBI)에 의해 1급 지명수배자로 추적받고 있다는 사실을 동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푸른 눈의 외국인 선생님을 의심하지 않은 것은 수업을 듣는 어린 학생들이나 그를 믿고 자녀들을 맡긴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A 씨는 지난 2003년 8월부터 2개월여 동안 미국 켄터키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친척 어린아이를 4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강간한 아동성폭행범이었다.

사건 발생 후 6개월이 넘게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던 A 씨는 지명 수배가 내려지기 전인 2004년 6월 영어 회화를 지도하는 원어민 강사에게 발급되는 비자인 ‘E-2 비자’를 발급받아 태국 등을 거쳐 국내로 입국했다. 8개월이 지난 2005년 2월 A 씨에 대한 지명수배가 내려졌고 미국 경찰은 A 씨의 최초 입국지인 태국만 샅샅이 뒤졌지만 A 씨는 이미 한국에 들어온 뒤였다.

아동성폭행범인 A 씨가 국내에서 어린이 등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했지만 관련 기관에서는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2010년 7월 개정된 법에 따라 원어민 강사 자격을 갱신하거나 신규 취득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범죄경력조회서를 제출토록 했지만 A 씨처럼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성범죄 수배자 등의 경우 범죄경력조회서에 어떤 표시도 돼 있지 않았다. A 씨는 입국 후 8년 동안 한 차례도 미국으로 귀국하지 않은 대신 비자 재발급 시기가 되면 중국이나 필리핀 등으로 출국했다 다시 입국하는 방법으로 체류기간을 연장하며 국내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올해 초 주한 미 대사관 측으로부터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로 수배 중인 미국인이 학원 강사로 활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전북 일대를 돌며 2개월 동안 뒤를 밟은 끝에 A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A 씨를 3일 오후 2시 미국으로 추방하는 한편 국내에서도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있는지에 대해 추가 확인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처럼 해외에서 성범죄를 저지르고 국내로 도피해 숨어 지내는 외국인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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