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한옥 사랑 역사는 서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부터 건축설계 일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파우저 교수는 당시 한국 건축을 공부하던 일본인 친구와 함께 자주 북촌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한옥이 밀집돼 있는 북촌 골목길을 걸으며 한옥의 매력을 사진에 담았다.
“한옥이 어우러져 있는 경관이 좋았고, 특히 물결 모양의 기와가 아름답게 다가왔어요. 또 한 집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살고, 집안에 아늑한 마당이 있는 것도 좋았어요. 당시 북촌은 정말 조용했어요. 골목을 걸으며 차분하게 한옥의 매력을 음미할 수 있었죠. 요즘은 골목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상가들이 들어차서 그때의 정취를 느낄 수 없어요. 많이 아쉽죠.”
파우저 교수는 1988년 고려대에 계약직 전임강사로 임용되며 한옥 생활을 처음 경험했다.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그 집은 연탄을 땠고, 마당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일부러 한옥을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원룸이 없었고, 주택 2층을 구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어요. 저렴한 예산으로는 반지하방이나 한옥 전세방밖에 구할 수 없었죠. 부동산중개업소에 가서 ‘방을 구한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한옥으로 데려갔어요. 그 집에서 신혼부부, 문간방 총각과 함께 생활했는데 서로 도우며 재미있게 살았어요. 연탄불 가는 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자주 꺼트려서 매일 동네 구멍가게에 번개탄 사러 다니기 바빴죠. 샤워는 물을 데워서 화장실 구석에 앉아 했고요(웃음).”
그는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다시 한국에 왔을 때는 계동 한옥에 살다 지금은 체부동으로 이사해 자신이 개조한 한옥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한옥의 매력에 푹 빠져살아요. 아파트에서는 못 살 것 같아요. 계동 한옥은 개량된 집이라 살기 편했어요. 그런데 북촌이 상업화되며 비교적 조용한 서촌으로 옮겨서 12평(약 39㎡) 정도 되는 한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 전까지 한옥에서 살며 아쉽게 느꼈던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건축사, 목수 등과 상의해서 저만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파우저 교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옥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1년 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 만들어 1년여간 ‘이상의 집’ 보전과 수성동계곡 복원에도 앞장섰다.
“서촌에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계속 한옥이 헐리고, 높은 건물이 올라가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함께 모여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서촌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서울시와 종로구에 민원을 넣기도 했어요. ‘이상의 집’ 철거 소식을 듣고는 달려가서 그 집의 가치를 알리는 일을 도왔어요. 또 수성동계곡에 근린공원을 조성하려 해서 자연스럽게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독신으로 살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옥에서 살겠다고 강조했다.
“혼자 사니까 가능한 거예요. 한옥에서도 살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바로바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주말이면 한옥과 골목을 찾아 이곳저곳 다니며 사진을 찍어요. 한국에서의 삶이 정말 행복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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