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 이곳 설 선물세트 코너에서 만난 주부 한수경(여·41) 씨는 “명절 때만 되면 업체들이 선물세트 판매경쟁을 벌이며 ‘할인’ ‘실속’ ‘저렴’ 등의 문구만 강조하며 제품을 홍보하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오히려 포장 비용 등을 구실로 제품 가격을 낱개로 구입할 때보다 훨씬 비싸게 받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1년에 한 번 있는 명절인 만큼 매년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각 업체에서 나온 직원들은 ‘특정 카드결제 시 추가할인’ ‘10개 구매 시 1개 무료 증정’ ‘실속 선물세트 구매찬스’ 등을 내세우며 설 선물세트 판매에 열을 올렸다.
설(31일) 명절을 1주일여 앞둔 가운데 주요 유통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선물세트 가격이 지난해 설보다 3∼10%가량 일제히 오른 데다 여전히 단품을 모아 살 때보다 가격이 크게 비싼 것으로 조사돼 소비재 시장에 ‘폭리’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같은 선물세트라도 백화점에서 살 경우 대형마트에서보다 최대 4만 원이나 가격이 더 비싼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문화일보가 주요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공식품 등 설 선물세트 가격을 조사한 결과, 식품업체 A사의 경우 선물세트 15개 제품 가격을 지난해 설보다 5∼10%가량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900㎖ 포도씨유 2개로 구성된 선물세트는 지난해 2만800원에서 2만2800원으로 9.6%가량 가격이 올랐다. 500㎖ 과즙음료 3개로 구성된 선물세트의 경우에도 지난해 1만8800원에서 1만9800원으로 5.3%가량 값이 뛰었다.
B사 역시 150g 참치캔 12개, 340g 햄 1개, 200g 햄 2개 등으로 구성한 선물세트 가격을 지난해 설(4만2800원)보다 4.8% 인상한 4만4800원으로 책정했다. 이 회사는 100g 참치캔 6개, 200g 햄 3개, 500㎖ 카놀라유 2병으로 구성된 선물세트 가격도 지난해보다 3.7%가량 올렸다. 이 밖에 200g 햄 9개로 구성된 C사의 선물세트 가격도 3만1800원으로 지난 설(2만9800원)보다 6.7%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주요 선물세트 가격이 1년 새 크게 오른 가운데 올해 역시 대부분의 선물세트 가격이 단품을 모아 살 때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드러나 업체의 ‘상술’이라는 소비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D사가 선보인 한 선물세트의 경우 단품을 모아 살 때보다 무려 9300원이나 비쌌다. 100g 참치 12개, 200g 햄 3개로 구성된 이 선물세트의 가격은 3만4800원. 하지만 대형마트 인터넷쇼핑몰에서 낱개로 구매할 경우 참치캔은 4개 묶음짜리가 5000원, 햄은 1개에 3500원이면 살 수 있어 같은 양이 2만5500원에 불과했다.
500㎖ 카놀라유 2개, 500㎖ 포도씨유 2개로 구성된 A사의 선물세트는 가격이 2만1800원이었으나 역시 같은 양을 단품으로는 1만9170원이면 구매할 수 있었다. 참치캔과 햄으로 구성된 B사 선물세트 역시 단품을 모은 것(4만1040원)보다 세트가 3760원 더 비쌌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인건비나 원료비가 전반적으로 올라 지난해 설보다 선물세트 가격을 일제히 인상한 것은 맞지만 지난 추석과는 제품 가격을 동결했다”며 “또 선물세트의 경우 나름 ‘텐플러스원(10+1)’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고객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할인 행사를 자주 하는 낱개 제품과 비교해 비싸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B사 관계자도 “지난해 설과 달리 지난 추석과는 선물세트 가격을 동결시켰다”며 “선물세트의 경우 포장비 외에도 제품 조립과 판매에 추가적으로 투입되는 인건비도 있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선물세트의 경우 같은 제품이라도 마트보다 최소 7500원에서 최대 4만5000원까지 더 비싼 것으로 조사돼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됐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만난 한 업체 직원은 “백화점용 별도 포장이 들어가 마트보다 1000∼2000원가량 제품가격이 비싸다”고 말했다.
하지만 340g 햄 12개와 500㎖ 고급 올리브유 3개 등으로 구성된 한 선물세트 가격은 백화점에서 11만9800원에 달했으나 마트에선 7만9800원에 불과했다. 포도씨유(500㎖) 3개로 구성된 선물세트 가격도 백화점에선 4만7800원으로 마트(2만9800원)보다 훨씬 비쌌다.
특히 백화점에선 배 등 신선식품도 개수가 마트보다 더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띠지나 각종 포장이 더해져 마트보다 가격이 2∼3배가량 더 비싸기도 했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출고가가 같더라도 백화점이 마트보다 임대료가 비싼 데다 전체 선물세트의 구매량도 적어 가격이 훨씬 비싼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은 “유통업체들이 명절 선물세트엔 잘 안 팔리는 제품도 섞어서 파는 것으로 아는데 포장 비용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비싼 가격을 받는 경향이 있다”며 “또 일부 제품은 지나치게 과다 포장을 해 소비자에게 원치 않는 비용을 전가하기도 하는데, 앞으로 소비자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가격을 정하는 등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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