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속지 마라 / 스티브 아얀 지음, 손희주 옮김 / 부키

“요즘에는 초등학생조차 스스로 정상인지를 의심한다고 한다. 주체 못할 정도로 활발한 아이에게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갓 성인이 된 사람에게는 자립하지 못한 과잉보호의 희생자라는 딱지가 붙으며, 수백만 명에 이르는 직장인은 자신이 번아웃증후군(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쌓여 일을 비롯한 일상생활에서 의욕을 잃는 증상)에 걸렸다고 믿는다.”

정말 그렇다. 이 책의 저자가 서문에서 일갈하듯 현대인들은 자신의 정신 또는 심리 상태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조금만 침울해져도 우울증에 빠진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되고,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다가도 히스테리 증세가 아닌가 스스로 의심한다. 저자는 이 같은 현대인의 과도한 자기집착이 심리학적 과잉 진단과 처방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불과 1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심리학이 이제는 종교의 자리를 넘나 보며 인간의 거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일상생활에 큰 고통을 야기하는 심각한 심리 장애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우울증·공포·중독·강박 등의 심적 고통을 겪는 사람은 당연히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인정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사소한 트러블조차 병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저자는 “시험에 대한 공포, 직장 스트레스, 슬럼프,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 가족 간의 불화, 충족되지 못한 갈망과 같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오늘날 병으로 진단된다”면서 “이렇듯 살면서 겪게 되는 불가피한 트러블을 마치 반드시 고쳐야 할 위기 상태로 판단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은 지뢰밭이 되고 말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가벼운 트러블까지 정신질환으로 몰아 ‘심리학 장사’를 하는 소위 전문가들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치료를 빌미로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장애를 만들어내는 악습을 ‘병을 파는 행위’라고 하는데 이미 오래전에 심리치료 분야에도 퍼졌다”며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의사가 정신질환으로 진단하는 횟수가 늘어났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여기에 각종 ‘심리 전문가’들도 횡행하고 있다.

“오늘날 심리전문가가 활동하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동기유발 전문가는 자신이 외운 문장을 줄줄 늘어놓으면서 마치 신비교도처럼 더 높은 의식 단계로 우리를 이끌려고 한다. 자신이 매우 독특한 ‘부드러운 기(氣) 운동’을 한다고 장담하는 독자적 전문가도 있다. 이 외에도 신경언어프로그래밍이나 가족사치료 방법을 선호하는 제법 잘 갖춰진 단체도 존재한다. 이들 상담가, 강사, 치료사 등은 어떤 식으로든 내면의 조화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물론 과도하게 자신의 심리 상태에 집착하는 개인에게도 문제는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감성과 의식,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조언을 숱하게 접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심리 상태에 집중할수록 심리학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심리학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떠받들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아를 주시하고 자신의 상태를 심리 분야의 기준에 맞춰 측정하다 보면 일상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라며 “자신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을 잠시 접어 두고 휴식을 취하면 생각에 빠져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심적 괴로움의 인플레이션을 다루면서 사소한 심리 문제가 왜 이토록 큰 문제로 여겨지는가를 면밀히 파헤친다. 그다음,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을 돌아보며 어째서 심리학이 그토록 쉽게 근거 없이 떠도는 ‘전설’이 됐는지 규명한다.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리상담 숭배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결론인즉슨 ‘심리학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는 것이다. 자신이 심리학자이자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 전문지 ‘게하른 운트 가이스트’의 편집장이기도 한 저자의 이 같은 파격적인 주장은 당연히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저자의 주장에 다소 편향적인 면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답은 자아를 A부터 Z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재미있게 무엇인가를 하는 데 있다”는 저자의 조언은 분명 귀담아들을 만하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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