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11일 김승연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풀려나게 됐지만 당분간 ‘비상 경영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김 회장의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검찰이 재상고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화그룹으로선 만 3년6개월 동안 이어져 온 ‘재판 리스크’가 여전히 끝난 게 아니다.

이번 판결에 경제계가 주목하는 것은 배임죄 적용문제에서 ‘경영적 판단’에 대한 인정과 기업인에 대한 인식 변화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행위가 회사에 손실을 끼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되는 지, 그게 기업인의 도덕성과 직결된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커져 왔던 것이다.

다행히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실제로 발생한 피해가 없는데도 피해 가능성이 있는 금액이 수천억 원으로 부풀려졌다”, “이번 사건은 기업주가 회사의 자산을 자신의 개인적인 치부를 위해 활용한 전형적인 사안과 다소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무리한 법적용과 검찰권 행사가 판결의 관건이었지, ‘재벌 봐주기’라는 식의 피상적인 법 감정에서 시비를 걸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기업·기업인의 비리와 불공정 행위에 대해선 예외 없이 엄정한 법의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시류 변화에 따른 무리한 법 적용과 행사는 언제나 모두에게 피해를 초래한다.

기업과 기업인은 한 몸과 같다. 김 회장이 구속돼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화그룹도 혹독한 ‘감옥살이’를 했다. 경영 공백이 낳은 위기 징후는 임직원들의 동요, 국내외 경제 상황과 맞물린 경영 실적 부실, 신규 사업 보류, 대외 신인도 추락, 경영 현안에 대한 판단 지연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 회장이 ‘제2의 중동붐’을 일으키겠다며 진두지휘한 80억 달러짜리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만 해도 추가 수주의 기회들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다. 이라크 재건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상실해 중국·터키 등에 밀리는 형국이다. 전쟁터 같은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부재는 협상력에 치명적인 것이다.

이는 한화그룹만 당면한 게 아니다. 수출, 내수, 일자리, 소득 등 국민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화그룹이 또다시 발목이 잡힌다면 위기가 아닌 파국이 될 것”이란 걱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지금은 그들이 파기환송심 선고 후 밝힌 “반성과 개선을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공언을 제대로 지켜가는지에 더욱 두 눈 부릅뜨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승훈 경제산업부 기자 osh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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