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행유예 집중분석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된 데에는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상당 부분의 참작사유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김 회장에 대해서는 그룹 전체의 재무적·신용적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계열사들의 자산을 동원했다는 점 등의 범행 동기와 함께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들이 대부분 이뤄졌다는 사후조치가 인정됐다. 11일 두 사건 선고를 계기로 2012년 이후 사라진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공식이 부활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이 같은 참작사유가 부족하다면 실형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쟁점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두 사건 모두 범죄 액수의 규모나 가담 정도는 사실상 크게 줄어들었다고 볼 수 없다. 김 회장의 경우 유죄로 인정됐던 배임 액수가 1797억 원에서 파기환송심을 통해 1585억 원으로 줄었다. 구 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그룹 총수로서 LIG건설에 대한 회생신청 사전 계획을 최종 승인했지만 허위 재무제표 작성·공시 관련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은 점이 받아들여졌다.

◆부활한 참작 사유=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12일 “두 사건 모두 범행 액수가 상당하기 때문에 참작 사유가 반영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징역형이 선고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소사실 중 김 회장의 배임액이 줄어들고 구 회장의 일부 가담 정황이 무죄로 판단되긴 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집행유예가 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 두 사건을 선고한 김기정 서울고법 형사5부 부장판사는 LIG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중대한 기업범죄’,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다’ 등 강도 높은 질타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번 선고에서 중요하게 반영된 부분은 참작사유다. 재판부는 김 회장이 배임을 한 동기에 주목했다. 결론은 기업주로서 개인의 사익을 위한 목적으로 회사 자산을 활용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측면에서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들이 대부분 이뤄진 점을 반영했다. 재판부는 “파기환송된 후 항소심까지 1597억 원이 공탁됐고 동일석유 주식 저가매각 부분과 관련해서는 피해금액이 전부 공탁됐다”고 밝혔다. 김 회장의 양도소득세 포탈세액도 전부 납부된 점도 반영됐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우리나라 경제건설에 이바지한 공로와 건강상태를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구 회장 역시 “78세 고령으로 간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향후 대기업 오너 사건 전망=이재현 CJ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잇따라 선고를 앞둔 다른 재계 오너들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사안이 다른 만큼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두 사건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범행 동기나 피해 변제에 있어서 달리 참작할 점이 없기 때문에 실형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LIG총수 3부자의 경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차남 구본엽(42) 전 LIG건설 부사장은 ‘집행유예 분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징역 3년이 선고돼 법정구속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참작사유는 어디까지나 참작사유일 뿐,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하 기자 kd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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