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련 ‘실패 요인’ 분석 #1. 최근 카드 3사의 개인정보유출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텔레마케팅을 금지시켰다. 사고 발생 원인과는 전혀 무관하게 규제를 도입하는 것을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텔레마케터들의 일자리 문제가 부각되자 백지화됐다.

#2. 상법상 대규모 상장법인 기준은 자산 2조 원이다. 2000년 옛 증권거래법에서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제도를 도입할 때 적용 대상을 정하기 위해 이 같은 기준을 마련했고, 이 기준은 14년이 지난 현재 상법에 그대로 살아 있다. 그 사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 603조 원에서 지난 2012년 1272조 원으로, 2배로 늘었다. 규제 대상 기업 수는 2000년 말 601개 사에서 2012년 말 650개로 증가했다. 규제 기준을 강화한 것도 아닌데 규제 대상 기업이 그냥 늘어난 것이다.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2년간 규제 개혁이 실패한 5대 요인’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꼽은 규제 개혁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전경련은 사고가 날 때마다 규제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공무원 밥그릇 지키기와 행정편의주의가 마구잡이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청소년의 게임 중독 문제가 불거지자 게임중독법을 만들어 규제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임 산업이 위축되고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는 문제는 고려되지 않고 규제가 도입된다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처럼 덩어리 규제가 들어왔다가 완화될 때는 ‘찔끔’ 풀리는 규제 완화 정책도 문제로 지적했다. 생색내기용이자 이른바 ‘규제 분식’이란 얘기다.

공정거래법상 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 지분율 규제, 공동출자 금지, 부채비율 제한 등이 1개 조문에 들어가 있어 ‘규제 1개’로 처리되지만 산업 현장에서 겪는 규제 개수는 5∼6개나 되는 것도 ‘규제 분식’의 사례로 꼽혔다.

규제 도입 때 파장 등을 분석하는 규제 편익 분석처럼 규제 도입을 규제할 시스템이 없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이 탓에 만들기 쉽고 지키기 어려운 규제가 속속 도입된다는 것이다. 만들기 어렵고 지키기 쉬운 규제로 바뀌어야만 규제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대규모 상장법인 규제처럼 주변 여건 변화 탓에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에스컬레이터형 규제’도 많다. 1996년 도입된 여행자 1인당 관세 면세금액(400달러)이나 구매 가능 금액(3000달러) 제한도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물가가 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규제 범위가 넓어진 케이스다. 규제 기준이 18년 동안 변동 없이 유지되다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관광 때 해외 소비만 늘려 관광수지 적자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규제 개혁 의지 부족도 지적됐다. 선거 때 표를 얻는 데만 급급해 ‘대기업’이나 ‘부자’를 부각시키고, 경제 효과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규제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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