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변호사 2만명 시대… 로펌 門 좁고 사무실 낼 형편도 안돼국내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아파트 등 자신의 거주지를 사무실로 등록하고 업무를 하는 ‘재택 변호사’가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문턱이 높아진 데다 독립적으로 사무실을 낼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재택 개업을 선택하는 변호사가 늘어나는 현상은 최근 변호사 업계의 불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22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하창우 변호사가 2009년부터 2014년 7월까지 개업한 변호사 6068명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나 빌라, 단독주택 등을 주소로 등록한 변호사는 총 204명(오피스텔 등 제외)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2009년 22명에서 2010년 29명, 2011년 29명으로 일정한 추세를 유지하다가 이후 급증해 2012년 46명, 2013년 48명, 2014년 7월 말 현재 30명이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들이 변호사 개업을 시작한 2012년부터 재택 변호사 규모도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발적으로 재택을 선택한 변호사는 드물었다. 지난해 개업한 A(변호사시험 2기) 변호사는 “취업하려고 했던 중소 로펌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문을 닫을 상황이 생겼고, 이후 다른 로펌을 찾지 못해 살고 있는 아파트를 사무실로 등록해 개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간혹 취업이 여의치 않더라도 집안의 도움을 받아 개인 사무실을 개업하기도 하지만 A 변호사는 고비용의 임대료와 직원 월급, 영업비 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A 변호사는 개업 몇 달 뒤 소형로펌에 취직해 재택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지난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발간한 변호사 회원명부를 통해서도 심심찮게 재택 변호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반 개업 변호사들은 사무실 주소를 ‘서울 서초구 서초동 0000―00(XX빌딩 3층)’ 등으로 등록해 놓는다. 하지만 재택 변호사들은 ‘00구 00동 000―0(XX아파트 000동 000호)’으로 거주지가 사무실 주소였다. 이메일 주소 또한 로펌이나 기업에 취직한 변호사들은 사내 메일 주소가 기재된 것이 일반적이지만 재택 변호사들은 포털 이메일 주소를 주로 사용했다.

대다수의 재택 변호사들은 “재택 개업을 한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다”며 인터뷰에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 어렵게 연결이 돼 취재에 응한 B(변시 2기) 변호사는 “처음엔 인터넷 블로그 등을 활용해 집에서도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고액을 들여 광고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B 변호사는 또 “사무실이 없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알게 된 의뢰인과 카페 등에서 만나 업무를 보더라도 실제 사건 수임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없었다”며 “이런 현실에서 재택은 취업으로 가기 전 단계인 하나의 임시직으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아파트의 경우도 사무실 용도뿐 아니라 사실상 거주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상당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택 변호사는 이번 조사 결과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변호사들이 ‘임시직’으로라도 재택을 선택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뒤따른다. 서울변회의 경우 변호사들이 신규 개업을 하기 위해선 당해연도엔 서울변회 입회비로 300만 원, 대한변협 등록비로 50만 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거나 연수원을 수료한 다음 해부터 개업하게 되면 입회비는 500만 원, 등록비는 150만 원으로 입회비 부담은 총 300만 원 커진다.

올해 연수원을 수료한 C(30) 변호사는 “사회생활 초년 변호사에게는 300만 원도 큰 액수”라며 “많은 변호사들이 재택 개업을 꺼리다가도 연말이 다가오면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일단 개업을 선택하게 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우선 재택으로라도 개업을 하고, 취업 때까지 휴업을 택하는 변호사들도 상당하다. 올해 4월 변시에 합격한 3기 1550명이 6개월 연수를 마치고 10월부터 신규 개업을 시작한 점에 비춰봤을 때 재택 변호사는 이번 연말 대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개업은 로펌이나 개인 사무실로 했다가 나중에 재택을 선택한 변호사도 있다. 사법고시 출신 D(여·32) 변호사의 경우 서울 서초동의 한 로펌에서 개업했지만 월급이 못마땅해 그만둔 뒤 다른 로펌을 찾지 못했고, 자신의 아파트로 주소지를 변경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 휴업 상태다. 불황에는 기성변호사나 사법고시 출신도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보다 앞서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에서는 사무실을 빌릴 비용이 없어 집안에 사무실을 차리는 ‘다쿠벤(宅弁·택변)’, 사무실 없이 휴대전화로 카페 등에서 의뢰인을 만나 사건을 수임하는 ‘게이타이벤(携帶弁·휴대변)’ 등의 단어가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신조어로 등장한 바 있다.

하 변호사는 “신입 법조인들의 심각한 취업난이 재택 변호사 급증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며 “관련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하 기자 kd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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