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의 천재가 아닌 창조계급이 먹여 살리는 사회 = 지난 2009년 12월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인터넷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미국 전역에 지름 2.5m의 빨간 풍선 10개를 띄워놓고, 풍선 위치를 가장 빨리 찾는 팀에 4만 달러(약 4200만 원)의 상금을 주는 이색 대회를 개최했다. 거대한 대륙국가인 미국에서 테러 등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 인터넷으로 어떻게 이를 파악할지 실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천재라 자부하는 이들, 자본력을 갖춘 기업 등 4000여 개의 팀이 참가했는데, 1등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상금 가지치기 방식’을 홍보했다. 직접 빨간 풍선을 찾지 못해도 어디에 있는 것 같다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상금 일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들을 공유했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모여들어 9시간 만에 모든 풍선을 찾는 데 성공했다. 미래사회를 이끌 키워드는 창의성과 융합, 협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미래학자가 새로운 국가 경쟁력은 창조적 집단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리처드 플로리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명명한 창조계급(Creative Class)은 말 그대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하나의 직업으로 설명되지 않고 여러 분야의 일을 융합하기도 하고, 직장의 경계를 넘나든다. 창조계급은 다양성, 개방성, 수평성, 혁신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인성이 곧 경쟁력 = 이같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인성도 주요한 국가 경쟁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창조계급을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는 창의·인성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미래 인재의 특징으로 △예술적 미와 감정의 아름다움 창조 △훌륭한 이야기의 창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의 결합 △다른 사람과 공감 △미묘한 인간관계를 잘 다룸 △자신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잘 유도하는 것 등을 제시했다. 상당수가 인성과 관련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미래사회에서 요구하는 핵심역량(DeSeCo)’으로 △이질적 사회집단에서 협동 및 상호작용 △자율적인 행동 △지식의 상호작용적 활용능력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이 창의성과 인성의 중요성을 파악한 선진국들은 교육 현장에서 창의·인성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빨간 풍선 찾기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 MIT가 위치한 매사추세츠주는 미국 내에서도 앞서가는 창의·인성교육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사추세츠주는 학교에서 창의·인성 교육을 하고,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 및 지수를 개발하기 위한 5년 장기 프로젝트를 2012년 시작했다. 미국 인성교육원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에 해당하는 창의·인성교육 과정을 마련해 44개 주 1만8000여 개의 교실에서 적용했다. 시행 결과 학생들의 친사회적 행동이 증가하고, 알코올과 약물남용이 감소했다.
◇행복하지 않은 교육 탓에 창의성, 인성 결여 =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창의·인성 교육이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탓에 행복감·자아존중감이 결여되고, 이로 인해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이 약화하면서 도덕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ICCS(International civic and citizenship education study)의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매년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은 조사대상 36개국 중 35위로 꼴찌를 차지했다.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학생들이 입시경쟁에만 매몰돼 자기 만족감과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타인과 협동하는 능력도 하락하고 있다”며 “청소년행복지수는 매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학기제 등 실효성 강화해야 =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자유학기제, 창의경영학교 등 현재 시작단계인 창의·인성교육을 내실화하는 것이다. 교육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기업, 대학 등이 참여해 학습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자유학기제가 보다 더 인성교육 중심으로 공동체 기반 위에 운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는 전체 중학교에 공동체 기반 지역사회 멘토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만큼 교육기부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 또 체험학습이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보다 많은 단체의 참여를 독려하고, 체험 자체보다는 체험을 통한 특정 주제 탐구 등 세부적인 교육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김윤정 한국과학창의재단 단장은 “창의·인성 교육은 나를 제대로 알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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