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발견 / 최광현 지음 / 부키

성탄절 그리고 새해. 이맘때가 되면 부각되는 키워드가 있다. 가족. 항상 곁에 있어서 미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가족은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때문에 대학에서 상담학을 가르치는 저자가 쓴 ‘가족의 발견’은 제목부터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같은 지붕 아래서 함께 밥 먹고, 잠을 자지만 정작 타인보다 교류가 없는 가족의 존재나 소중함은 ‘발견’해야 할 만큼 먼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성탄절 전날이 되면 가족, 친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저자는 항상 마땅한 식사 장소를 찾느라 애를 먹는다. 동분서주하다 지친 저자가 아내에게 “도대체 식당 하나 예약하는 것도 왜 이렇게 힘들지?”라고 묻자 아내의 답은 명쾌했다. “그야 당신이 가족들에게 정말 잘해 주고 싶어서 그런 거지.” 식당을 고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느라 힘들다는 건 일종의 사고의 전환이자 관점의 변화다. 진정한 가족의 발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고전 ‘안나 카레리나’를 보면 “행복한 가족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은 불행의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문구가 나온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름의 법칙이 있지만 불행해지는 경우의 수는 부지기수라는 뜻이다. 각 가족의 성향에 따라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이 ‘다름’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가족 간 문제는 과거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잊게 하거나 애써 무시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그리고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장에서 힘들게 살아 돌아온 군인 아버지가 자녀들의 자생력을 길러주기 위해 많은 규칙을 정하고 훈육한다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사랑과 관심이겠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자녀 입장에서는 집에서의 하루하루가 전쟁과 다름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지사지가 결여된다면 가족은 싫어도 곁에 있어야 하는 세상 더없이 불편한 존재인 셈이다.

가족 안에서 경험하는 상처는 더 아프다. “남편을 ‘남편’이라 부르는 건 ‘남의 편’이기 때문”이라는 말장난에 웃음 짓지 못하는 아내가 한둘일까. 믿었던 배우자, 내리사랑을 줬던 자녀, 존경하던 부모로부터 배신감을 느낀다면 그 상처는 타인에게 받는 것 이상으로 쓰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결국 가족은 우리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말한다. 가족 안에서 버림받은 사람은 갈 곳이 없고, 가정이 편안하면 모든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가족의 속내를 잘 알고 있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것이 시작이다.

“사랑한다, 이해한다.” 단순한 한 마디가 아니다. 건네기 쉽지 않은 이 한 마디를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생각은 꼬리를 물고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그 사이 우리는 가족에게 정서적으로 한 발 더 다가서 있을 것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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