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쉬마엘이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을 여는 이 문장은 몇 해 전 미국 서평지 아메리칸 북 리뷰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 첫 문장’입니다. 소설 순위, 그것도 문장의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마뜩잖지만 위대한 작품의 멋진 시작을 한 자리에서 훑어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아메리칸 북리뷰는 당시 ‘소설의 첫 문장’ 베스트 100을 선정했는데 ‘모비딕’에 이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차례로 뽑혔습니다.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은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중력의 무지개’의 첫 문장은 ‘비명 소리가 하늘을 가로질렀다’입니다. ‘백 년의 고독’은 ‘몇 년이 지나 총살을 당하게 된 순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오래 전 어느 오후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일을 떠올렸다’로, ‘롤리타’는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으로 시작합니다.

선정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문장의 무게와 인상적인 날렵함, 사회와 인생 그리고 사랑 등 작품의 주제를 예고하는 통찰력, 무엇보다 독자들을 끌고 가는 힘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도 비슷한 리스트를 선정했는데, 이 목록에선 ‘오만과 편견’이 최고의 첫 문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어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라는 ‘안나 카레리나’(레프 톨스토이)의 그 유명한 문장이 뽑혔습니다.

‘첫 문장을 읽고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으면 죽은 글이다’는 논픽션 작가 윌리엄 진서의 말처럼 첫 문장은 쓰는 작가나 읽는 독자에게 모두 특별하고도 중요합니다.

이 부담감 때문에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베르나르 키리니)의 주인공 피에르 굴드 같은 인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굴드는 첫 문장은 든든한 바위여야 하고, 모든 것을 그 위에 안전하게 구축할 수 있게 하는 화강암이어야 하며, 독자들에게 내미는 첫 만남의 악수라며 완벽에 도달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 나보코프,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첫 문장을 훑다가 좌절한 그는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어서 소설을 쓰지 못합니다. 나중엔 이를 이기고 인기 작가가 되지만 말입니다.

2015년 새해입니다. 계획과 크고 작은 바람들을 갖고 출발한 여러분의 2015년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했는지요. 올해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 어떻게 한 해 삶의 작품을 써내려갈지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좋은 문장으로 시작해, 마지막엔 의미 있는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하길 기원하며 올해 북리뷰를 시작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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