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소설가 정이현이 본 남산·남대문

타워 없는 남산을 떠올리기란 불가능하다. 1972년생인 내게 남산타워(N서울타워)는 언제나 서울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존재다. 남산타워와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절묘하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은 멀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멀지는 않다. ‘그곳’에 변함없이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끔 위로가 된다.

타워가 없는 남산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남산이 없는 서울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남산 중턱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해방촌의 구불구불한 언덕을 끝없이 올라야 하고 여러 개의 비좁은 골목을 지나야 한다는 것을 입학식 날 처음 알았다. 남산의 옆구리 길을 오르며 느꼈던 낯선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교문에서 오 분만 걸어나가면 남산 순환도로가 나왔다. 용산도서관도, 남산도서관도 걸어서 갈 수 있었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하얏트 호텔도, 주한독일문화원도 지척이었다. 남산은 서울 한복판이지만 도심도 아니고 그렇다고 변두리도 아니었다. 그곳은 그저 남산이었다. 남산에서 나는 자랐다. 벚꽃잎 휘날리는 봄날의 체육 시간엔 파란 체육복을 입고 줄 맞춰 달려 남산공원까지 올랐고 어떤 날엔 소월 시비 아래서 국어 수업을 하기도 했다. 열일곱 살의 첫눈도 남산 위에서 맞았다.

남산에서는 남쪽의 낮은 지붕들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였다. 서울에는 집들이 정말로 많았다. 그 집들 하나하나마다 모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저 아래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복닥복닥한 세계는 내가 태어나 자라온 세계,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세계이기도 했다. 이 세상이 아주 넓다는 것,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일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남산에서 깨달았다.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남산에서 배웠다. 서울의 가르침이란 매양 그렇게 현실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넘었다. 남산 밑에서, 나는 사랑하고 일하고 꿈꾸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아왔다. 때론 삶에 실패한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일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문득 남산을 올려다보게 된다. 저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남산타워의 불빛이 반짝인다. 그 아득한 불빛이 속삭이는 것 같다. 괜찮다고, 이 도시에서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이다.

남산타워는 1969년 티브이와 라디오 방송을 서울에 송출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종합 전파탑으로 기공되었다. 타워가 일반에 관광 목적으로 공개된 것은 1980년 10월부터였다. 2000년, YTN에서 인수했고 2005년부터는 CJ에서 위탁 운영을 맡고 있다. CJ는 그해 12월, 남산타워를 N서울타워로 리뉴얼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4년 12월 22일, 오랜만에 남산에 올랐다. 이른 새벽부터 서울 하늘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다 그친 날이다. 월요일 오전, 남산 순환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는 적었다. N서울타워 케이블카 승강장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8500원의 요금을 내고 왕복표를 끊었다. 10분마다 운행되는 케이블카 안은 대부분 요우커(旅客)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찼다. 케이블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수직 상승해 3분 만에 전망대 앞에 도착했다.

“80퍼센트 이상이 중국인이지, 이제 내국인은 없어요. 10퍼센트나 될까 말까 해요.” 전망대 앞 공원에서 만난 사진사 김택진(74) 씨의 단언이다. 그는 30년 이상 여기를 터전으로 관광객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해 왔다. 오랫동안 손에 익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디지털카메라로 바꾸고 디지털 인화 시스템을 마련해 즉석에서 사진을 프린트해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여섯 해 전부터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려는 안간힘이었다. 2015년의 희망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는데,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말하며 흐려지는 그의 눈을 보니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남산타워(N서울타워)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은 사랑의 자물쇠. 철제 난간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빛깔의 자물쇠들 하나하나에 사랑과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는 연인의 마음이 담겼다.  김선규 기자 ufokim@
남산타워(N서울타워)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은 사랑의 자물쇠. 철제 난간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빛깔의 자물쇠들 하나하나에 사랑과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는 연인의 마음이 담겼다. 김선규 기자 ufokim@

N서울타워의 새로운 명물은 사랑의 자물쇠다. 철제 난간에 수천 개의 알록달록한 빛깔의 자물쇠들이 입을 꾹 다문 채 매달려 있다. 바로 옆에서 개당 5000원이나 7000원짜리 자물쇠를 판다. 자물쇠마다 소원이 빼곡히 적혀 있다. ‘YJ♡♡JS 우리 사랑 변치 말자’ ‘내년엔 꼭 결혼할 거야!’ ‘시험 합격하고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해요’. 연인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머리를 맞대고 소원 문구를 의논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행복, 사랑, 영원을 다 넣어야 하는데 자꾸 둘 사이에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그래도 행복한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두 마음만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자물쇠 문구 아래 날짜는 대부분 2014년 12월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매달린 소원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소박하고 작고 뜨거웠던 진심의 한순간들이 거기 펄럭였다. 그러면 됐다. 중요한 건 약속의 그 순간이었을 테니.

서울타워에는 다섯 개 노선의 남산순환버스가 있다. 5번 버스에 몸을 싣는다. 남산도서관, 백범광장, 힐튼호텔을 거쳐 남대문시장에 닿는다. 남대문시장에 처음 간 것도 남산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환경미화를 위해 아크릴 물감이 필요했다. 남대문 문구도매상가에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아크릴 물감들이 다 있는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여기가 진짜 어른들의 세계라는 것, 비로소 내가 그 진짜들의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실감 때문이었다. ‘없는 게 없는 곳!’이라는 남대문시장에 대한 첫인상은 지금껏 변함없다.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남대문시장의 6번 게이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대지면적 2만여 평, 점포 1만여 개, 종사자 5만여 명에 달하는 남대문시장은 평범한 전통시장이 아니다. 아동복·남성복·여성복 등 각종 의류를 비롯해 섬유제품과 액세서리, 주방용품, 민속공예, 장신구, 식품, 잡화, 농수산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을 취급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시장이다. 낮에는 소매, 밤에는 도매시장으로 종일 분주하다.

1990년대 말부터는 외환위기 여파와 동대문시장 등의 성장으로 예전의 영화에서 좀 비켜서 있는 것도 같다. 최근에는 대형 마트와 아웃렛 매장 등이 늘고 인터넷 거래가 보편화되면서 매출이 크게 줄고 있단다. 시장 전성기에 하루 평균 내방객이 40만 명이었다면 이제는 그 절반 수준이라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오후 3시, 아동복 상가의 상인 김미숙(45) 씨는 아직 개시도 못 했다면서도 새해 희망을 묻자 살며시 미소를 띠었다. “해주는 게 없는 데도 잘 크는 애들한테 미안해요. 남편도 건강이 안 좋은데 못 챙겨줘서 늘 미안하고.” 소원을 말하라는데 그녀는 자꾸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리고 경기도 좀 나아졌으면 좋겠고요. 좀 살 만해졌으면.” 그녀가 덧붙인 말이, 복닥복닥한 세상에서 또 한 해 살아 내야 할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영하의 날씨, 남대문시장의 오후는 여전히 뜨거웠다. 저기 우뚝 선 남산타워가 이곳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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