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 책들을 읽어가면서, ‘내가 본 것’이 결국 ‘내가 보기 원했던 것’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 시대 문학이 발견했다고 믿은 ‘실재’ 또한 어쩌면 ‘가상’의 다른 얼굴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까지 번지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인들의 시가 한창이었던 200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2010년대 중반에 이른 지금도 이 생각을 꺼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황인찬, 이현승, 이준규의 시는 저에게 그것을 ‘적어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들 시는, 이 시대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던 (이성복, 「그 날」) 지난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세계의 병리성을 비판해 온 비평 언어도 그 병리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당신이 본 게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도 자기 팔다리에 찍힌 화인(火印)부터 보여줄지도 모릅니다. 젊다는 것이, 새롭다는 것이, 나아가 전복적 상상력을 꿈꾸는 일이 이 시대 꼭 필요한 ‘부정성’을 일궈내는 일이라는 사실에 토를 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세 시인의 시는 그 부정성이 자신에 대한 깊은 응시를 통해서도 변용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그들 시 속에 제 삶을 덧대 보면서 PC 자판을 두드려보다가 신문사에 갔었고, 그렇게 한숨 돌렸을 때 당선 통보가 왔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에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의 은혜를, 정진하는 일로 갚고자 합니다. 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를 길러 주신 은사 박이도 선생님, 그리고 힘들 때마다 격려해 주신 스승님들과 선배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1969년 충남 아산 출생
△경희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국문학 박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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