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벽(왼쪽) 동국대 석좌교수와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22 문화일보 사옥 앞에서 2014년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키워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조벽(왼쪽) 동국대 석좌교수와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22 문화일보 사옥 앞에서 2014년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키워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조벽 & 김대식 한국사회를 말한다신년대담은 한 해를 회고하고 새해를 전망하는 작업이다. 반성과 기대, 비판과 희망이 교차되는 과정이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신년대담에서는 으레 과거란 미래를 위한 소재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을 회고하고 2015년을 전망하는 대담을 앞두고 걱정이 앞섰다. 세월호 참사로 시작돼 청와대 문건 유출과 ‘땅콩 회항’으로 이어진 2014년의 기억들이 너무 무거웠고 2015년을 전망하는 각종 지표들은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와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를 신년대담에 모신 것은 두 사람이 지난 한 해 우리사회를 심층 진단하는 문화일보 파워인터뷰 주인공들 중 최고의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가장 어려운 시점에서 가장 냉철한 분석과 함께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를 제시했었다. 내심 품었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24일 문화일보사에서 진행된 신년대담에서는 두 사람의 열정과 비전이 시너지를 내면서 2015년의 밝은 청사진이 그려졌다.

△박민 부장 =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고 일부 사건은 내년에도 파장이 계속될 전망이다. 국민들은 피로감을 넘어 좌절감까지 느끼고 있다.

△조벽 교수 = 지금 한국 사회와 국민들은 아프다고 진단할 수 있다. 거의 두 세대 동안 일제식민지, 6·25전쟁, 군사정권, 민주화투쟁 등을 거치면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입었다. 아픈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나’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이다’ ‘자기밖에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기 전에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힐링 열풍이 분 것도 아픔이 많아서다. 그런데 힐링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냥 위로한다고 힐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비록 아프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것을 찾아 실천할 때 힐링이 시작된다.

△김대식 교수 = 아픈 사회는 좋은 키워드다. 뇌과학자인 제 입장에서 한국 사회는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진단할 수 있다. 사실 한 해 많은 사건이 있었고 국민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세상은 단 한 번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 항상 많은 사건들이 반복되고 다양한 욕망이 소용돌이쳤고 전쟁이 벌어졌다. 이건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겪는 일이다. 지난 한 해 일어난 참사와 그로 인한 슬픔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고 거기서 잘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질리언스(resilience·회복력), 즉 문제와 충격에서 헤쳐나올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우리사회가 전통적인 노이로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노이로제적인 반응을 보이는 원인은 우리가 과거 거시적인 문제를 한번도 제대로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서양은 성공하고 동양은 실패했는지, 동양에서도 일본은 성공했는데 한국과 중국은 왜 실패했는지 진지한 토론을 통해 답을 얻었어야 하는데 대충대충 넘어갔다. 인종과 민족 간의 우월은 없다. 다 똑같다. 똑같은 조건에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성숙한 나라들은 발생한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이해한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이 이긴 역사, 일본이 이긴 역사, 독재의 역사, 북핵 문제 등을 전혀 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거시적인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대신 아주 사소한 문제들이나 다른 문제에 의식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폭력 남편에게 매맞는 아내가 작은 것에 강박증 증세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광복 70년이 됐으니 좀 더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우리 문제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

△박 = 우리 사회가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에서는 두 분이 일치하는데 원인 분석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조 = 지난 한 해 히트친 영화 명량에서 군사들이 모여 12척의 배를 보고 있는 장면에 핵심이 있다고 본다. 12척의 배가 있는 것은 하나의 팩트다. 그런데 많은 장군과 군사들은 ‘12척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2척의 배에서 절망을 본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은 반대로 ‘12척이나 남았다’고 생각했다. 가능성에 대한 비전을 본 것이다. 객관적인 조건, 팩트는 동일하게 존재하지만 서로 다른 시각으로 팩트를 본다. 부정적 시각으로 보면 그 사회는 매우 암울해지고 피해망상에 걸리고 패배주의에 빠진다. 우리는 항상 ‘이래서 가망이 없다’ ‘저래서 문제다’며 부정적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그런 사람들의 특성은 남을 탓하는 것이다. 예산부족 탓, 대통령 탓, 국회 탓을 한다. 자기는 빠져있다. 주인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노예근성만 생긴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긍정의 힘이다. 사람에게는 3가지 특성이 있다. 타고나는 선천적 재능과 자질이 첫 번째고 환경적 요소나 운 등이 두 번째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내가 바꿀 수 있는 ‘태도’다. 태도가 부정적이면 불평·불만만 하는 패배주의자가 된다. 그런 사람이 모인 조직은 원동력을 잃는다. 우리가 긍정적 태도를 지니는 것은 선택에 의한 것이다. 배울 수 있는 것이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은 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박 =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과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나.

△김 = 같은 문제다. 큰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야 우리 사회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가진 사회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앨런 머스크는 화성에 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우리 학생들은 삼성에 입사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자질적으로 더 훌륭한데 왜 이렇게 태도가 다를까. 교육이 문제다.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가정 교육, 사회 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개인이 스스로 뭘 하는 존재로 키우기보다 ‘을’로 성장하도록 만든다. 즉 이미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져 있는 규칙을 무조건 따라가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성장하면서 주체적인 존재가 돼 정해진 것에 순응하기보다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업그레이드된 인재들이 나올 수 있다.

△박 =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양육과 교육이 이뤄졌는데 어떻게 변화를 시도해야 하나.

△김 = 공학에서 방정식의 답을 찾을 때 기존 방식이 어려우면 프레임 자체를 흔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시야가 좁아 산 정상에 서더라도 산세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 발 아래만 볼 수 있다. 그래서 만약 남산 정상에서 내려올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발보다 낮은 지점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가다가 중간지점에서 평지를 만날 때다. 자기 발보다 낮은 지점이 없으니 평지를 계속 맴돌게 된다. 개인적 입장에서는 정답이고 정당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정답이 아닌 것이다. ‘자기 발보다 낮은 곳으로 걸어가는’ 기존의 해결책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상황 자체를 흔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착화된 사고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창의교육을 확대하거나 수능 체제를 바꾼다고 교육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프레임 자체를 한번 흔들어줘야 한다. 혁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매년 공교육, 사교육에 수십조 원을 투자하는데 차라리 그런 돈 다 모아서 고3 학생들을 1년간 무료로 세계 여행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자는 것이다.

△박 = 우리 교육이나 우리 사회의 시각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우리 사회가 그런 교육시스템과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지난 40여년간 경제와 민주화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취를 이룬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조 =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우리 사회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집단 초감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감정(meta emotion)은 살아온 역사를 통해 누적되고 축적된 사건, 경험, 읽고 배우고 믿어온 생각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즉각 반응을 보이는 감정을 말한다. 즉 태도의 원천이 초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초감정은 개인의 역사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울고 있으면 누구는 불쾌할 수도 있고 누구는 공감하며 슬퍼할 수도 있다. 이처럼 유사한 경험이 있다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초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간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집단적인 초감정이 형성됐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그 원동력은 한국 사람들이 교육으로써 나라를 살리고, 부모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 자녀의 미래에 투자하겠다고 사회적 합의를 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 동안 교육을 기가 막히게 잘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 성공의 덫에 빠져있다. 지금까지 훌륭하게 잘해왔는데, 2000년 초까지만 유용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인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 4만 달러 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김 = ‘성공의 덫’은 적절한 개념이다. 농구로 단시간에 성공한 후 축구나 야구도 성공한 농구처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농구라는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손으로 공을 다루는 것인데 축구에서는 아예 규칙위반이다. 우리는 너무 절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본다. 상황에 따라 시각을 달리해야 성숙한 사회다. 따라잡을 게 많았던 시대에 반복적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주 좋은 교육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거의 다 따라잡았다. 이제 새로운 학문을 만들 때다.

△조 = 한국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몇가지 지표와 직면해 있다. 행복감과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고 이혼율과 자살률은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위기 요소들을 살펴보면 결국 사람 문제다. 그래서 저는 혁신이라는 단어를 쓸 때 신(新)자를 몸 신(身)자를 쓴다. 구조가 바뀌어도 사람이 똑같으면 소용없다. 사람을 바꾸는 게 혁신이다. 그 중심이 교육이다. 결국 교육이 가장 큰 걸림돌이자 아쉬운 점인데, 결국은 교육이 문제를 해결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김 = 초감정이 중요하다. 사회는 사람의 합집합이면서 그 이상의 무언가로 형성된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뛰어나다. 그러나 잘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축적이 안 된다. 이탈리아가 비슷하다. 개인은 뛰어나고 창의적인데 사회는 망해간다. 일본은 사회는 좋은데 개인은 엄청난 노이로제에 시달린다. 우리는 사회와 개인 둘 다 노이로제에 빠져있다.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이 적절한 밸런스를 이뤄 개인도 행복하고 사회도 발전한다. 우리도 그런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북유럽 국가들도 과거부터 개인과 사회 사이의 밸런스가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은 20세기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내전을 했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우리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가망없다’고 말하는 것은 인종차별적, 민족차별적 발언이다. 사회와 인간 모두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박 = 북유럽 국가들과 같은 밸런스를 이루려면 어떤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가.

△조 = 지금 한국 교육은 대단히 비합리적이다. 저는 합리라는 말을 통상의 의미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이성적이란 의미가 아니라 이치(理)에 합당하다(合)는 뜻으로 쓴다. 그런데 이치라는 것은 논리와 이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심리, 이성과 감성, 머리와 가슴이 합쳐진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교육은 머리 쓰는 방법만 가르친다. 그 면에서는 세계 1등이다. 그러니 마음 쓰는 것은 빵점이고 꼴찌다. 사회성, 협력성 등에 대해 조사하면 36개국 중 36위다. 교육을 통해 이런 것들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최근 이과와 문과를 통합하는 정책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문이과가 통합돼 있다. 즉 문과도 이과식으로 가르친다. 시를 감상하지 않고, 문법을 따지고 공식으로 분석한다. 진정한 융합은 이성과 감성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 쓰는 법에는 인성교육도 포함되나 인성교육만은 아니다. 감성의 세계는 인성을 포함한 더 큰 세계다. 앞으로 우리가 다른 세상을 원한다면 이제 다른 교육을 해야 한다.

△김 = 문과가 이과식이라고 하는데 이과도 제대로 된 이과식은 아니다. 우리나라 이과는 진짜 수학, 과학이 아니고 이를 흉내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제가 쓴 ‘빅퀘스천’이라는 책에서 ‘삶은 왜 살아야 하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학자가 왜 그런 것을 묻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원래 과학이 그런 것이다. 단순히 방정식을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을 찾아내 그걸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분방정식은 우주의 중력을 표현하는 건데, 아무도 그 목적에는 관심이 없다. 모두 해법에만 관심이 있다. 과학은 3000년 전 그리스에서 질문으로 시작한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다 철학자면서 수학자이자 시인이었다. 과학은 수천 년 동안 질문을 해왔다. 선진국은 국민소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 클럽은 인류 지식풀에 공헌할 수 있는 질문들을 만든 나라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질문과 답을 따라만 가는 나라들을 무시한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3만 달러에 맞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만들어내야 한다. 쉬운 방법은 솔직히 없다.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책으로 배우기는 어렵다. 경험의 다양성을 제공해야 한다. 현 체제하에서 창의적 교육을 강조하면 당장 창의력 학원이 생길 것이다.

△박 = 창의력 교육의 문제점 못지않게 지난 한 해는 소통부재가 우리사회의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

△조 =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일종의 도구 또는 방법으로 본다. 그러나 저는 소통을 현상이자 결과로 본다. 흔히 소통의 핵심 요인을 경청(敬聽), 공감(共感)이라고 한다. 두 단어의 한자를 보면 모두 마음 심(心)자가 들어가 있다. 경청은 귀 열고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마음 열고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한들 내 맘이 닫혀 있으면,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그런데 마음을 열면 비난받고 공격받을 것이라고 걱정한다면 마음을 닫을 수밖에 없다. 마음을 여는 것의 전제조건은 신뢰다. 결국 신뢰가 있어야 마음을 열고 그래서 소통이 되는 것이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의 사이가 긍정적이어야 한다.

△박 = 사람들 간의 긍정적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나.

△조 = 망하는 저기능 조직과 흥하는 고기능 조직의 특징을 보면 이게 극명히 나타난다. 연구에 따르면 저기능 조직은 부정성이 긍정성보다 3배 가량 높다.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2배 정도 많은 조직은 현상을 유지한다. 고기능 조직은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5∼6배 많다. 우리나라는 압도적으로 부정성이 높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걸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세상의 악은 없어지지 않는다. 악을 없애려는 데 투자하는 시간과 돈, 정신적 에너지를 긍정성을 높이는 데 쓰면 된다. 그럼 그 조직은 흥한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미래 핵심 과제와 테마를 긍정성, 긍정심이라고 본다.

△김 = 긍정성은 정말 중요한 테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3가지다. 첫 번째가 자신감이다. 이순신 장군도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고, 알렉산더 대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두 번째는 독립적인 자아다. 자신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는 요소다. 긍정성이라는 것은 현실을 어느 쪽으로든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섀넌의 정보이론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패턴이 정해져 있다. 좋은 학교에 가고, 졸업해서 취직 후 결혼해서 아이 낳고 집 평수를 넓혀 나가는 것이다. 이는 섀넌의 관점에서는 정보가 없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가면 예측 가능성이 낮아진다. 비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구상에 왜 한국이란 나라가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존재하는 지구가 한국이 없는 지구보다 더 좋아야 한다. 그러려면 오리지널이 돼야지 복사판은 안 된다. 오리지널은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복사판은 새로운 정보가 하나도 없다.

△박 = 그런 고민에 대한 공감대는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모방을 넘어 오리지널로 업그레이드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적지 않다. 두 분은 우리 사회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 = 한국 젊은이들은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성, 오리지널리티, 기여도, 유일성 등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자기만의 유일한 강점을 알아차리고 최대한 발전시켜 그것을 발휘하도록 해주는 게 바로 교육이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자아의 창조다. 그런데 저는 한국이 큰일을 낼 나라라고 생각한다. 김 교수 말대로 과거에는 따라가기 바빴다. 지금도 한국을 얼핏 보면 굉장히 시야가 좁고 다양성이 없는 것 같다. 인종, 빈부 격차, 생김새, 말투, 선호하는 음식 등 많은 부분에서 다양성이 부족하다. 그런데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스펙트럼이 넓다. 한국 사람들은 동양의 사고체계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데도 서양의 지적 세계를 다 소화해냈다. 과학기술도 세계적 수준이고 동서양 예술이나 스포츠에서도 톱 수준에 진입했다. 우리가 소화해낸 문화와 다양성은 엄청나다. 그게 우리세대까지 이뤄낸 업적이다.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에서는 퓨전이 진행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오는 중이다. 그리고 그것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동양도 서양도 아닌 새로운 어떤 것이다. 한류는 그 시작이다. 그런 흐름은 연예계에 한정되지 않고 전 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그런 흐름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꼭 필요한 나라가 될 것이다.

△김 = 멸종의 위기까지 갔다 돌아온 민족으로서 얻은 교훈은 죽도록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잘한다. 이 공부에 대한 열정은 버리면 안 된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공부를 하기보다는 가르치려 한다. 20세기 초까지는 그게 가능했다. 과거 인간의 팔다리를 기계가 대체한 산업혁명이 세계 지형을 바꿨다. 유럽이 산업혁명을 리드하면서 세계는 서양화됐고 우린 그걸 따라가기 위해 70년을 공부했다. 여기서 세상이 끝난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없다. 그러나 5년 전부터 기계지능의 시대가 시작됐고 이 시대는 인간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다. 이제 새로 나오는 기계는 팔다리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능력을 대체한다. 모든 것이 리셋된다. 지난 카드 게임은 끝나고 게임의 규칙도 달라진다.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주인이 되려면 새로운 규칙을 빨리 학습해야 한다. 우리는 학습에 강점이 있다. 이전 게임의 승자들은 승자의 덫에 빠져 새 시대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 느릴 것이다. 그들은 새 시대를 따라잡는 방법을 모를 수 있고 의욕도 강하지 않다.

△조 = 거기에 대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제가 한국 신문에 처음 소개된 것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인 1998년이다. 당시 나는 우리 사회의 창의성 부재를 지적했다. 지금도 안 변했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 즐겨보는 tv프로가 있다. 케이팝스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존 가수 흉내를 잘 내는 지원자가 각광받았는데, 이젠 그런 사람은 경쟁력이 없다. 직접 작사·작곡하고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를 내는 독창성이 경쟁력의 제1 기준이다. 그런 것에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도전한다. 원래 예술부분이 항상 앞서가고 정규 교육은 뒤따라가게 마련이다. 이미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박 = 마지막으로 신년 덕담을 부탁한다.

△김 = 우리나라는 자신감을 가질 자격이 있다. 멸종의 위기에서 세계 톱 10의 위상까지 올라온 나라는 세계 역사상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하다. 따라서 당면한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지에 대해 스펙트럼을 조금만 넓히면 된다.

△조 = 기성세대들은 다들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은 큰일을 치를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으니 기대하고 믿고 도와주자.

진행 = 박민 사회부장 min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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