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영 환경은 위기 그 자체입니다. 임직원 모두가 지금이 위기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불황기일수록 기회는 많습니다.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냅시다.”
1년 전, 2014년 갑오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주요 그룹 총수들이 신년사를 통해 밝혔던 주요 내용의 일부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반영하듯 주된 화두는 ‘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는 점을 보여주듯이 그것을 뛰어넘겠다는 결의에 찬 의지가 신년사 곳곳에 배어 있었다. “한번 부딪쳐보자”는 결기도….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5년 1월, 을미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경제계를 다시 한 번 둘러본다. 한국 산업계가 깊은 침묵에 빠진 듯하다. 심화하는 경제위기와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악재에 짓눌려 “위기다”라고 목소리 높일 의욕조차 꺾인 건 아닌지…. “올 한 해 감당해야 할 위험요인을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는 기업인들의 하소연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임원 500명을 대상으로 2015년 경영환경을 대변하는 사자성어를 설문조사한 결과 ‘필사즉생’(必死卽生·죽기를 각오하면 살 수 있다)을 꼽은 이가 가장 많았다고 하니 산업 현장에서 기업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의 정도를 실감케 한다.
화불단행(禍不單行). 나쁜 일은 홀로 오지 않는다. 이는 2015년 한 해를 시작하며 기업인들이 절감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리스크 요인이 안과 밖, 사방에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2015년 세계 경제 대전망’에서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화두로 ‘금리 인상’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를 꼽았다. 미국은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면서 돈줄을 죄는 반면, 유럽과 일본 등은 돈 풀기를 가속화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요동치며 냉탕과 온탕을 오갈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투자자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하는 한국 금융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와 가속화하는 일본의 엔저 위협은 또 다른 대외 위협요인이다.
나라 안을 들여다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당장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는 ‘경제민주화’ 관련법이 10여 개에 이른다. 공정거래법·하도급법·가맹사업법 시행령 등 대부분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여야가 표심을 의식해 정치논리로 도입했던 ‘대기업 때리기’식 법안의 후폭풍이 올해부터 본격화하는 것이다. “향후 3년간 기업의 추가 비용부담 규모가 12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산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환경부의 밀어붙이기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 올해부터 시행된다. 10대 그룹의 추가 세부담액만 1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업소득환류세제도가 시행되는 것도 올해다. 경기 활황기에는 기업 규제책이 득세하더라도 경기 침체기, 특히 경제위기 국면에선 위축된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북돋우기 위한 규제완화책을 구사하는 게 경제의 ABC다. 주요 국가들이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자국 기업들의 기(氣)를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은 한국사회의 ‘반(反)대기업 정서’를 더욱 부추겨 가뜩이나 위축된 기업 심리를 더욱 옥죄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은 대기업 오너들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되돌아보게끔 하는 따끔한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 오너 모두를 공동 범죄자 취급하며 윽박지른다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경제는 심리이고, 성공의 80%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런데 “할 수 있다”는 구호가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런 현실은 분명 한국 산업계의 심각한 위기다. 지금과 같은 기업인 사기로는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백전백패다.
대내외 경제 한파에 자신감을 잃고 잔뜩 움츠러든 기업인들에게 가시 돋친 비난을 잠시 내려놓고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가 절실한 시점이다. 2년 넘게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활성화법을 통과시키는 건 이를 위한 의미 있는 노력의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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