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손·손가락 부분 많아
3년여 개발…올해 본격 생산
초동대처에 유용한 의료제품
“저가형 만들어 中 등에 공급”
“손가락 등 절단사고를 당한 뒤 직장에 복귀하는 근로자 비율이 23.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애가 생기면 다시 직장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대부분은 가정파괴와 자존감 상실에 이르게 됩니다.”
이재욱(30) 핑거119 대표는 지난 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절단 사고가 났을 때 절단된 부위를 깨끗한 수건에 싸 얼음팩에 넣어서 가져가야 봉합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은 경우 괴사가 빠르게 일어나 수술이 어렵다”며 “그런데도 대부분의 산업현장에 응급처치를 위한 도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어릴 때부터 시화·반월 공단이 위치한 경기 안산 지역에 거주해 오다 보니 절단사고 환자를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핑거119 직원 한 명의 아버지 역시 절단사고를 당해 이후 집안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안전보건공단의 자료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신고가 되는 절단사고는 연 8000여 건 정도다.
하지만 영세업체의 경우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연 2만 건 정도의 절단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절단사고 중 80% 정도는 손 또는 손가락 사고에 해당한다. 신속한 응급처치를 하면 봉합수술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실제 산업현장의 응급처치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절단사고 환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대외적 이미지가 훼손되거나 외교적 문제로 비화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대표는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절단사고로 손가락을 잃었는데 영세사업장 사장이 치료비와 보상금을 주는 대신 불법체류자로 신고해 노동자가 추방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노동자는 필리핀의 한 시골마을 족장의 아들이었는데 이후 마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됐고, 한국인이 그 마을을 방문하면 무척이나 싫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현장에 누구나 손쉽게 응급처치할 수 있는 키트를 구비해 놓아야 한다는 사업 아이템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안산 경안고 학생들이 2012년도 소셜벤처 경연대회 청소년 부문에서 이 아이디어로 대상을 받았고, 저와 그 고등학교 교사였던 제 지인이 함께 그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라며 “3년의 사업 준비 기간을 거쳐 새해에는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사업 문외한이었던 이 대표가 창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응급키트 디자인을 만들어 제품을 생산하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현재는 4차 디자인이 완성된 상태로 금형 설계까지 마쳤다. 금형제작과 의료기기 인증만 받으면 시중 판매가 가능한 상태다.
사업자금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지원금과 창업선도대학인 연세대의 지원을 받아 충당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총 8000만 원 정도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본격적인 시판에 들어가는 올해부터는 일반 벤처캐피털에서 투자유치를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들어 사회적기업에 투자하려는 벤처캐피털이나 금융기관이 등장하고 있다”며 “여전히 일반 영리기업보다 투자유치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씩 사회적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핑거119가 개발한 응급키트는 절단된 손가락을 넣을 수 있는 ‘보관함’과 절단된 손을 압박·지혈하는 ‘지혈키트’ 두 가지로 구성된다. 보관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봉과 동시에 냉매가 작동하는 것이다. 보관함은 (손이나 손가락이) 절단되는 즉시 차갑게 보관해서 병원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장기 이식용 보관함과 유사한 원리를 적용했다. 시판을 위해서는 의료기기 등록을 해야 한다. 핑거119는 2015년 1분기 중에 의료기기 등록을 마치고, 6∼8월부터는 판매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응급키트 개당 가격은 10만∼30만 원 사이로 책정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저가 상품으로 개발하려고 했지만 의료기기인 탓에 무작정 저가로 밀어붙일 수 없었다”며 “초기 개발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는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비영리 단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회적기업은 기본적으로 기업이고, 기업가가 기업가다워야 사회적기업이 지속 가능하다”며 “어느 정도 수익이 생기고 투자를 받으면 저가형 모델을 만들어 영세업체나 중국·인도·아프리카 등 절단사고가 많은 지역까지 공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취업 준비를 하던 평범한 젊은이였다. 대학생 시절부터 각종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으나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봉사활동을 통해서 알게 된 지인이 “청소년들이 내놓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니 사회적기업을 창업해 보자”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사회적기업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이 대표는 “아직 주변의 걱정이 많지만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면서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성공을 거두겠다는 목표를 이뤄 보이겠다”고 밝혔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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