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비핵화 회담’ 개최… 특별 소위·기구는 없었어남과 북이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이후 양자 간에 북핵 문제를 본격 협의한 것은 2011년 개최한 ‘남북 비핵화 회담’ 2차례밖에 없다. 1차 북핵 위기가 1994년 10월 북·미 간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고, 2차 북핵 위기도 2003년 8월 남·북·미·중·일·러 6개국이 참여한 6자회담이 개최되면서 국제적 차원에서 다뤄졌기 때문이다.

사실 남북 간 핵 문제 논의는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전후에는 꽤 활발했다. 사회주의권 몰락과 미국의 해외 전술핵무기 폐기 선언으로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남북은 1991년 12월 26∼31일 핵협상 고위급회담 실무접촉을 3차례 가졌다. 당시 남측 대표는 나중에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동원 통일원 차관이었고, 대표단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포함돼 있었다.

남북은 3차 접촉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고, 공동선언은 이듬해 2월 19일 발효됐다. 이후에도 남북은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를 1992년 12월까지 13차례 개최하지만, 북측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위원회는 성과 없이 사라졌다.

이후 북핵은 북·미 간 이슈로 전환됐고,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 문제가 된 2차 북핵 위기도 6자회담이라는 별도의 틀에서 다뤄졌다.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 등이 6자회담의 결과물이었다. 6자회담 산하에 △한반도 비핵화 △북·미 관계 정상화 △북·일 관계 정상화 △경제 및 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등 5개 실무그룹도 생겼다.

남북 간에도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핵 문제가 논의되기는 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합의문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에서 핵 문제는 “남북은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노력한다”는 원론적 수준이었다.

이후 남측은 2011년 7월과 9월 각각 인도네시아 발리와 베이징(北京)에서 2차례 남북 비핵화 회담을 성사시키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북측 역시 남북 비핵화 회담을 발판 삼아 2012년 2월 9·19 공동성명 이행을 약속하는 내용의 2·29 합의를 미국과 체결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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