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비공식 방문도 아니고 완전 밀행(密行)이다. 그래서 정보기관도 서동수의 동선을 알고 있겠지만 시치미를 떼고 있을 것이다. 오후 2시 반, 서동수는 동성그룹 서울 사무실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수행원은 최성갑 하나뿐이다. 옅은 색 선글라스를 끼고 추운 날씨여서 오리털 점퍼를 입은 서동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회장실은 건물 20층에 있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에 탄 서동수와 최성갑은 안쪽으로 들어가 벽에 등을 붙이고 섰다. 동성 소유인 양재동의 20층짜리 이 건물은 3층에서부터 20층까지 동성그룹이 사용하고 있다. 25인승 대형 엘리베이터여서 서동수가 먼저 탄 뒤 10여 명을 더 태운 후에야 출발했다. 그때 앞쪽에 탄 사내가 제법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김 부장. 인원 계획 다시 작성해서 보내.”

“예, 상무님.”

옆쪽 사내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내일까지야, 알았어?”

“예, 상무님.”

엘리베이터 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상무라는 사내는 서동수 앞쪽 세 번째였는데 들어올 때 보니까 얼굴이 상기되었고 곧 엘리베이터 안에 술 냄새가 덮였다. 점심을 먹으면서 낮술을 마신 것 같다. 상무 주위에 둘러선 사내들은 대여섯 명으로 위축된 듯 몸을 굳히고 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앞쪽 여직원 둘이 내렸고 남자 셋이 탔다. 셋은 일제히 상무라고 불린 사내를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구석으로 비켜섰다. 다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상무가 말했다. 이제는 거침없이 말한다.

“공장 새끼들이 아직 정신 못 차렸어. 지금이 어떤 때라고.”

모두 숨을 죽였고 상무의 말이 이어졌다.

“개새끼들.”

그때 다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10층이다. 서동수는 최성갑의 뒤로 몸을 숨겼다. 문이 열리면서 사내들이 모두 내렸는데 두어 명이 이쪽을 힐끗거렸지만 최성갑 뒤의 서동수는 보이지 않았다. 상무라고 불린 사내는 40대 후반쯤으로 서동수에게는 초면이다. 엘리베이터에 둘이 남았을 때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모두 술을 마셨군.”

아직 버튼을 누르지 않았으므로 20층 버튼을 누른 서동수가 최성갑에게 지시했다.

“저 상무가 누군지, 어떻게 입사했는지 은밀하게 조사해 보도록.”

“예, 장관님.”

“유 실장한테 상황을 설명하면 금방 알려줄 거야.”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둘은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복도로 나왔다. 이곳은 비서실과 기조실, 대표이사실, 회장실이 있는 곳이다. 서동수가 20층 버튼을 미리 눌렀다면 상무는 큰소리를 치지 않았을 것이다. 둘이 비서실로 다가갔을 때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물었다. 인형처럼 매끄러운 곡선의 여직원이다.

“저, 어디서 오셨죠?”

여직원의 시선이 서동수를 스치고 지났지만 모르는 것 같다. 그때 다가선 최성갑이 대답했다.

“저, 회장실에 가려는데요.”

무뚝뚝한 표정에다 억양 없는 목소리였고 최성갑은 건장한 체격이다. 여직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불안해진 표정이다.

“회장님은 안 계시는데요.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뒤에 서 있던 서동수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하긴 이곳에는 일 년 만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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