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오전, 동성유통의 사장실에서 전성남이 물었다. 이맛살이 찌푸려져 있다. 전성남은 50세, 둥근 얼굴에 건장한 체격이다.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해서 이마가 넓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이다. 전성남이 앞에 앉은 허재영을 보았다. 상사에 있던 허재영을 유통 사장실로 불러낸 것이다. 유통 건물도 양재동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로 5분 거리다. 머리를 든 허재영이 대답했다.
“예, 회장실에서 아무도 부르지 않고 수행비서 시켜서 이곳저곳에 연락을 하는 것 같더니 7시쯤 혼자 나갔습니다.”
“박 사장도 부르지 않고?”
“예, 부를까 봐 회의도 취소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하긴 나한테도 연락을 안 했으니까.”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전성남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정치인들하고 연락했겠지, 회사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어?”
“예, 하긴….”
“그런데 이번에 너희들 상사에서 이사 진급은 다섯으로 늘릴 테니까 네가 두 명쯤 더 알아봐.”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어깨를 편 허재영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정기 인사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동성상사는 동성그룹의 모(母)회사지만 유통 사장 전성남은 이사 진급 심의위원장인 것이다. 심의위원은 각 계열사 사장 6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전성남이 조사팀까지 지휘하고 있어서 독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허재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두 명 골라서 각각 3억씩 걷겠습니다.”
“잘 하겠지만 증거를 남기지 마라.”
“제가 어디 한두 번 합니까?”
“너, 혹시 가운데서 빼가는 건 아니지?”
“그럼 제가 천벌을 받습니다.”
“천벌이 어디 있어, 인마.”
“속일 사람이 없어서 제가 매형을 속입니까?”
“너, 나 팔고 다니지 마.”
“아니, 무슨 말씀입니까?”
눈을 치켜뜬 허재영이 전성남을 쏘아보았다. 얼굴까지 굳어져 있다.
“누가 그럽니까? 우리 사이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 비서실에서도 10분이나 기다렸다가 들어왔단 말입니다.”
“인마, 그건 눈치채게 하지 않으려고 내가 그런 거야.”
쓴웃음을 지은 전성남이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양반이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나한테는 꼭 연락을 하던 양반이.”
“여자 만났을지도 모르지요.”
“하긴.”
전성남이 소파에 등을 붙였다.
“그 양반이 좀 밝히지.”
“신의주 장관으로 오래 갈 것 같은데 동성 경영에는 손을 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곧 그렇게 될 거다.”
“그럼 매형이 회장이 되셔야죠.”
“야, 시끄러.”
얼굴을 굳힌 전성남이 허재영을 노려보았다.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을 조심하란 말이다. 이번 이사 진급 건은 실수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돼.”
“절대로 말 새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머리까지 저은 허재영이 말을 이었다.
“제가 녹음장치까지 확인하고 접촉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걸리면 공멸하는 걸 아니까 저보다도 더 조심한다고요.”
그리고 현금도 국내 계좌로 받지 않는 것이다. 해외 계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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