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독자들에게 먼저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아주 위험하다. 경이와 충격, 혐오와 불안, 의심과 반박을 저절로 불러일으킨다. 마치 다윈을 만난 신학자처럼, “그럼, 네 아비는 원숭이냐?”라고 옷깃을 잡고 종주먹을 쥐면서 호통이라도 치고 싶어진다. 물론 다윈의 아버지가 곧바로 원숭이는 아닐지라도 호통으로 먼 옛날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다는 사실이 바뀔 리 없지만 말이다.
원제는 ‘Thinking’, 한국어판 제목은 ‘생각의 해부’다. 책에는 ‘생각의 학문’인 ‘인문학’의 문제들을 ‘실험실의 학문’인 ‘행동과학’(심리학)의 문제들로 재구축하려는 최첨단 학문의 움직임이 기록돼 있다. 어조가 눈앞에서 말하는 듯 놀랍게 생생하다.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이를 ‘구어체’로 풀었기 때문이다. 누가 말하는가?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의 대니얼 길버트, ‘블랙 스완’의 나심 탈레브, ‘마음의 진화’의 대니얼 데닛, ‘생각에 관한 생각’의 대니얼 카너먼 등이다. 모두 이 분야의 세계적 대가들이자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베스트셀러 저자들이다.
이들을 비공식 모임에 불러 모은 사람은 세계 최상급 출판 에이전트 중 한 사람인 존 브록만이다. 모임 취지는 단순하다. “지식의 최전선에 닿는 방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정교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은 다음, 스스로에게 묻곤 했던 질문들을 서로 주고받게 하는 것”이다. 모임 이름은 ‘엣지(Edge)’. 사유의 최첨단을 다루겠다는 뜻이다. 1996년 설립된 이래 전 세계에서 초청된 일급 학자들이 동료들을 앞에 두고 자신의 최신 연구 주제를 이야기하고 서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힘은 ‘책’이다. 이들은 각자 자기 분야의 한 극단에서 섬처럼 존재하지만, 브록만이라는 지식 연출자의 탁월한 기획력에 그와 연결된 수많은 편집자들이 작지만 의미 있는 기적을 이뤄 낸 것이다. 이런 ‘기적’이 있는 출판을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
‘생각의 해부’는 ‘마음의 과학’ ‘컬처 쇼크’에 이어서 나온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수없이 이뤄진 ‘엣지’ 강연의 정수만을 모아 주제에 따라 분류했는데, 하나하나 첨단 지식의 지도이자 나침반으로 손색없다. ‘생각의 해부’는 인간이 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다룬다. 의사 결정, 직관, 도덕성, 문제 해결, 예측 등 생각을 도구로 쓰는 온갖 인간 활동이 심리학, 신경과학, 철학 등 각 분야에서 호출된 22명의 석학들 입에서 차례로 이야기된다. 강연은 모두 매력적인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석학들의 자문자답으로 정리했다. 이 질문과 답이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자 핵심이다.
대니얼 길버트의 질문. “실연을 당했을 때에는 죽을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모두 그러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적응의 한 현상일 뿐이야. 다만 물건을 사면 더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은 조심해. 그건 소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가르치는 소비사회의 거짓말이야.”
심리학계의 거장 게르트 기거렌처의 질문. “야구의 외야수는 어떻게 순간적으로 공을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을까?” 답. “어림셈법을 쓰는 거야.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정보량도 빈약할 때 좋은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지. 응시각, 즉 공과 눈 사이의 각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면서 다른 요소는 무시하는 거야. 불확실성이란 없다고 여기고 이를 정복하려 들지 않고 이를 순간적으로 이겨내는 거야.”
시몬 슈날 케임브리지대 인지·감정연구소장의 질문. “자신이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누가 도덕적으로 행동할까?” 답. “부족하다는 사람이지.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해서 자신의 도덕 수준을 끌어올리려 하거든.”
티모시 D 윌슨 버지니아대 심리학 교수의 질문.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고 알려진 자기계발산업의 담론들은 정말 과학적인가?” 답. “자기계발서는 복권이나 마찬가지야. 복권을 살 때 희망도 함께 사잖아. 당첨되지 않더라도 한 주일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거지. 그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어. 사나흘 동안 계속 하루에 15분씩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거야. 자신의 내러티브를 편집해서 네 인생 스토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정하는 거지. 이쪽이 실험적으로 검증된 더 확실한 방법이야.”
인지과학자 알바 노에의 질문. “인간 경험의 본질을 모두 뇌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답. “아니야. 우리 자신은 뇌가 아니기 때문이지. 마음은 우리 내면에 있는 계산기 같은 게 아니야. 우리 내면에는 아무것도 없지. 의식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주변 환경과 상황에 참여하는 거야. 뇌와 의식과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세계가 정보를 함께 보관하고 있지 않다면 뇌 자체의 힘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너무나 빈약하지.”
현대 사회에서 생각이라는 문제는 거대한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닥쳐오는 문제들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시민이야말로 바람직한 인간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실험과 검증’이라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해 생각의 문제에 답해 보려는 학문적 시도의 첨단을 보여준다. 영토를 빼앗겨 버린 인문학 쪽의 답변이 궁금하다.
문학평론가 장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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