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림이 더 잘 보인다고 하죠. 어떻습니까?”
“뭐가 말씀입니까?”
서동수 앞에서는 팀장과 공장장 관계였을 때도 긴장했던 김창국이다. 조심스레 묻고 나서 김창국은 기다렸다. 신중한 성격이다. 서동수가 차분해진 표정으로 김창국을 보았다.
“동성 말입니다. 사장단 문제, 경영관계, 회사 분위기, 경영진 소문, 인사 문제까지 여기선 어떻게 보입니까?”
김창국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지만 시선은 떼지 않았다. 37개 계열사 사장 중에서 야간대 출신은 김창국뿐이다.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전자부품 공장경력 23년, 18살부터 근무해서 17년 만에 공장장이 되었지만 5년 후에 부도가 났다. 그러고 나서 1년간 공사장 잡부로 일하다 동성에 온 지 10년이다.
서동수는 잠자코 기다렸다. 머리가 반백인 김창국이 두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서동수를 응시하고 있다. 검은 피부, 이마의 주름살이 깊다. 영등포의 33평짜리 아파트에 12년째 살고 있는데 큰딸은 경찰 시험에 합격해서 여순경이 되어 있고 둘째 딸은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다. 그때 김창국이 말했다.
“동성 주가가 지금은 계속 오르지만 장관께서 회사로 돌아오시면 곤두박질을 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증권가에서 진작부터 나온 이야기다. 지금은 너무 자주, 오래 들은 터라 모두 면역이 되어 있다. 다시 김창국이 말을 이었다.
“주인이 없는 회사는 방만해지기 마련입니다. 동성에는 지금 주인이 없지 않습니까?”
한 모금 물병의 물을 삼킨 김창국이 물끄러미 서동수를 보았다.
“제 회사가 아닌데 제 회사처럼 아끼고 아랫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 욕심이겠지요.”
“…….”
“배가 부르면 게을러집니다. 게을러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앞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옆을, 뒤를 봅니다.”
“…….”
“2년쯤 전부터 동성이 게을러졌습니다. 지금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거품입니다. 어느 한순간에 꺼질 수가 있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고 보면 서동수 자신도 배가 부르고 게을러져 있는 것이다. 배가 고플 때는 앞만 보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이 솟아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서동수의 어금니가 저절로 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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