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 논설위원

지난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참석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이미지를 말해보라고 부탁했더니 절반 이상이 ‘불통(不通)’이라고 했다. 필자도 지난 한 해 칼럼을 쓰면서 가장 많이 쓴 단어 중의 하나가 소통(疏通)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3년 차에 접어들지만 앞으로도 이 단어를 여전히 많이 써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이나 여론을 전달하는 언론인이 지겨울 정도로 2년 내내 대통령에게 소통을 주문했지만 만족할 만한 변화가 없다. 불통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첫 기자회견에서 “소통의 의미가 단순한 기계적 만남이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소통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야당과 여론에서 제기하는 소통을 뭔가 불합리한 민원을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듯하다. 같은 단어를 놓고도 청와대 안과 밖에서 보는 의미가 이렇게 차이가 있으니 진전이 있을 리가 없다.

박 대통령이 12일 취임 후 두 번째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 활성화 대책 등 장밋빛 국정과제를 강조했지만 정작 국민이 듣고 싶은 인적쇄신은 기대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마음의 벽이 높은 탓일까. 올해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 등 각종 개혁과 여러 경제적 상황에 대해 공무원과 국민에게 호소하고 공감을 얻어 추진해야 할 일이 많다. 최근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언처럼 법적으로 허위로 드러난 ‘정윤회 문건’은 잊고 “경제도약에 매진하라”고 다짜고짜 훈계조로 말할 일이 아니다. 2013년 윤창중 파문이 터졌을 때 청와대가 ‘대통령께 사과’했던 식이나, 이번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에 대한 불충(不忠)을 걱정한 일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때 경쟁자인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긴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과감히 이전하는 안은 어떨까. 장소, 만나는 사람이 바뀌어야 생각과 행동이 바뀔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처들이 세종시 청사로 옮겨간 만큼 공간적인 문제도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께서는 일어나시면 그것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같다. 지금같이 관저(官邸)에서 집무하는 시간이 많고 노출도가 낮아서는 공감 형성이 힘들다. 청와대 집무실도 비서들이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 장관·비서관들조차 접근이 어려운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벗어난다면 그것 자체가 적극적인 소통 의지로 비친다. 비서실장마저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는 일도 없을 것이고, 총리·장관들을 수시로 만나면서 국정 운영에 대한 논의도 원활해질 것이다. 외부인사들이 대통령을 만나기도 부담이 덜할 것이다. 대통령이 장관을 복도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거나, 환경미화원들을 격려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이웃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사저에서 휴식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출근부터 저녁 퇴근 시간까지 분(分) 단위 일정이 다음날 신문에 게재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참모들과 수시로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장면이 매일 언론에 노출된다. 독일, 영국 등 민주주의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카톡 문자도 ‘네’와 ‘네^^’의 의미가 다르고, 직접 만나 상대방의 표정이나 눈빛이 전하는 의미가 다른데 몇 장짜리 문서와 전화 통화만으로 소통을 다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정윤회 문건 파문’에서 보듯 근 1년 동안 청와대 내 비서들 간에 암투(暗鬪)가 치열하게 벌어졌음에도 대통령에게 보고되거나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조선 태종은 ‘말을 구한다’는 뜻의 구언(求言) 제도를 만들어 자신을 비판하는 글을 직접 구했다. 이것을 ‘응지상소(應旨上疏)’라고 하는데 어떤 말을 써도 처벌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임금인들 비판이 달가울 수는 없다. 소통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다. 미리 상대방의 의견을 단정해버리면 그것은 독선이고 독단이다. 대통령 주변에 ‘심부름꾼’보다 목숨을 바쳐가면서 극간할 충간지사(忠諫之士)가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먼저 과감히 장벽을 걷어야 한다.
이현종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