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핵심기술 유출에 흔들리는 세계 경제 영토법정관리에 헐값 인수돼
재매각되며 기술 넘어가
中업체는 수백억 돈방석

L사 에어컨도 넘어갔으면
3년간 1조6000억 날릴 뻔

핵심부문 빼돌려 상품화땐
국내외 시장 잠재매출 날려


순간의 방심으로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핵심기술이 국가의 미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산업기술 유출은 심각성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정보당국이 다행히 적발한 사례도 있지만 적발하지 못한 기밀 유출사건도 적잖은 것으로 평가돼 한국이 잃어버린 시장규모는 막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확실한 ‘스모킹건’이 없어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함으로써 입은 피해액도 수십조 원대를 훌쩍 넘는다.

한국기업들의 첨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그 피해는 기술 개발 비용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해당 기술로 신제품을 만들어 상품화에 성공했을 경우 그로부터 발생하는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의 잠재적 매출액까지 한꺼번에 날리게 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2월 지엠대우자동차(현 한국GM)는 중국의 체리자동차를 상대로 자사의 경차 ‘마티즈’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혐의로 중국 상하이(上海) 제2고등법원에 불공정경쟁법 위반 소송을 냈다. 지엠대우는 또 체리차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디자인 특허에 대해서도 중국 지적재산권관리청 산하 특허심의위원회에 무효 신청을 냈다. 당시 지엠대우가 중국의 업체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했던 이유는 바로 기술 유출로 인한 디자인 베끼기 논란 때문이었다. 지엠대우는 “마티즈(중국 현지 판매명 시보레 스파크)와 체리차의 소형차 ‘큐큐’(QQ)는 외관상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비슷하다”며 “체리차는 독자 개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우리 회사의 기밀사항을 무단으로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 출시된 마티즈는 소송 제기 당시까지 전 세계에서 130만대 이상이 팔렸고, 중국시장에는 사건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인 2003년에 진출했다. 지엠대우는 두 차종 간의 유사성을 인지한 뒤 조사에 들어가 차체와 외관, 내부 디자인이 거의 비슷한 점을 발견했고, 대다수 부품들도 호환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확인했다. 지엠대우 측은 “수억 달러의 돈과 수천 명의 인력이 마티즈 개발에 투입됐다”며 “침해당한 권리와 이익을 되찾기 위해 공정한 해결 방안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법원은 2년여간의 공방 끝에 결국 체리차의 손을 들어줬다.

해외 헐값매각도 해외시장을 잃는 주요 통로다. 디스플레이 기술로 유명했던 오리온전기의 해외 헐값 매각은 편법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 유출뿐 아니라 해외시장 상실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오리온전기는 지난 2003년 5월 말 부도로 인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5년 홍콩에 파트너를 둔 미국계 투자펀드에 인수됐다. 당시 자산가치 1400억 원의 공장을 600억 원에 인수받은 해당 투자펀드에 대해 헐값 매각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더 기가 막힌 상황은 인수 이후에 일어났다.

오리온전기를 인수한 투자펀드는 오리온전기를 3대 핵심사업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브라운관(CRT)별 법인으로 분할한 뒤 재매각을 추진했다. 그 뒤 오리온CRT는 2개월 만에 홍콩계 펀드인 오션링크사에 팔린 뒤 청산됐다. 또 오리온PDP와 오리온OLED도 2007년과 2008년 중국 창홍전자그룹에 팔렸다. 이로써 청산된 오리온CRT에서 일한 1300명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고, 당시 신기술로 각광받던 PDP와 OLED 분야의 특허기술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국내 유명 대기업 L사가 정부지원금을 받아 개발한 첨단 에어컨 제조기술은 2012년 중국 경쟁사에 넘어갈 뻔했다. 전직 연구원이 기술을 빼내려다 국가정보원에 적발된 것이다. 이 기술이 중국에 넘어갔다면 해당 기업은 향후 3년간 1조6000억 원에 이르는 매출액 손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해당 기술은 에어컨이 가동될 때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다. L사 직원 A 씨 등은 이 기술을 외장형 하드디스크에 담아 유출을 시도했다가 정보당국에 적발돼 구속수감됐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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