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6월 초순이면 수확이 시작되던 보리는 배고픔과 허기로부터 민초들을 구해주던 소중한 곡물이었다. 한때 혼분식 장려 운동이 벌어지며 보리는 또 ‘찬밥’ 신세가 됐지만 근래에는 오히려 보리의 여러 성분들이 현대인의 성인병에 좋다고 해 다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보리의 효능은 사실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중국의 약초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본초강목에 ‘보리는 오장을 건강하게 하고 기운을 내려주며 체한 것을 다스리며 식욕을 증진한다’고 돼 있다. 실제로 한방에서는 발아시킨 보리를 맥아라 하며 약재로 처방한다. 주로 건위(健胃)·소화촉진 작용을 해 비위허약, 소화불량에 쓰인다.
보리는 영양학적으로 확실히 훌륭한 곡물이다. 일단 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등 한국인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미네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몸의 신진대사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비타민B1, 비타민B2, 니아신 등의 성분도 많이 들어있다. 보리에 풍부한 식이섬유도 건강한 장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성분이다. 식이섬유 중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식이섬유는 장에서 수분을 흡수해 점성의 겔(gel)을 형성, 변을 부드럽게 만들어 배변을 쉽게 한다. 또 물에 녹지 않는 불용성 식이섬유는 음식 찌꺼기의 장 통과시간을 짧게 해 각종 대장질환 발병률을 낮춘다. 그래서 만성변비 등의 치유식으로 보리를 식재료로 한 음식이 많이 추천된다.
그러면 ‘겨울 식중독’이라는 노로바이러스와 보리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이와 관련해 보리의 성분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이 항균·항산화 효능을 지닌 베타글루칸이다. 베타글루칸은 효모, 버섯류, 보리, 귀리 등 곡물의 세포벽에 많이 포함돼 있는 식이섬유의 일종으로 세포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성분이다.
최근 이 베타글루칸의 면역력 향상과 관련해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동물실험에선 베타글루칸을 먹이면 독감·헤르페스(대상포진)·탄저병 등에 덜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이 먹으면 면역력이 강화되고 상처가 빨리 아물며 항생제의 효과가 배가된다.
아직 노로바이러스에는 치유약이 없다. 따라서 예방에 신경을 쓰거나 평소 면역력을 키워 바이러스균이 침투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베타글루칸이 풍부한 보리야말로 노로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계절에 최적의 예방식일 수 있다.
그 외에도 베타글루칸의 효능은 여러 가지 더 있다. 우선 베타글루칸은 끈적거리는 성질이 강해 소장에서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한다. 그래서 당, 지질, 담즙산 등의 흡수를 지연시켜 주고 콜레스테롤의 합성을 억제한다. 이 같은 작용 때문에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아 당뇨병을 예방해 준다. 보리를 다이어트식으로 권하는 것도 베타글루칸의 그 같은 효능 때문이다.
보리에 함유돼 있는 다량의 폴리페놀화합물도 항알레르기, 면역력 강화에 효과가 아주 탁월하다. 또 인체에 유해한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기 때문에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 노화방지에 아주 효과적이다. 특히 보리에 함유된 폴리페놀 성분의 하나인 프로안토시아니딘은 최근 암 예방 효과와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보리를 거론하며 보리차를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 배탈이 나 설사를 자주 할 때 탈수를 막기 위해 따듯한 보리차를 먹인 것도 소화기에서의 보리 효능을 민간에서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 아닐까.
보리의 중금속 해독에 대한 연구도 국내의 한 대학에서 진행돼 눈길을 끈 적이 있다. 당시 연구진은 수돗물에 볶은 보리를 넣어 보리차로 만들어 먹을 경우 납이나 비소 등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상당 부분 제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글=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사진=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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