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교 / 워싱턴 특파원

반달리즘(vandalism), 문명파괴 행위와 살인, 약탈을 뜻하는 야만주의의 용어는 원래 유럽에서 나왔다. 5세기 초 유럽의 민족 대이동 때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은 지중해 연안부터 로마까지 광폭한 파괴 행위를 자행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중에서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로 다른 종교인들을 무참하게 살육했다.

2015년 새해 들어 반달리즘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유럽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보복성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무슬림평의회에 따르면 파리 테러 사건이 터지고 이슬람 시설에 총격이나 수류탄을 투척한 사례가 프랑스에서 최근까지 21건 발생했다. 테러를 테러로 되갚는 검은 그림자가 유럽에 깃들고 있다. 지난 연말 독일 드레스덴에서도 페기다(PEGIDA·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 추종자 1만7500여 명이 집회를 가졌다.

최근 세상에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반달리즘은 중동지역 이슬람국가(IS)에서 비롯됐다. IS는 지난해 8월 미국 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에 이어 여섯 명의 외국인 인질을 참수해 서방국가들을 경악시켰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후 11일 파리 시민들이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샤를리라고 쓰인 긴 현수막과 프랑스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후 11일 파리 시민들이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샤를리라고 쓰인 긴 현수막과 프랑스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연말 시리아 인권관측소(SOHR)는 IS가 6월에 칼리프 국가를 선언하고 6개월여 동안에 시리아에서만 1878명을 처형했다고 발표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IS 공습작전을 전개 중인 미국도 반달리즘의 역사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미국 비판론자들은 반달리즘을 거론할 때면 인디언 학살의 문제를 항상 제기한다. IS와 탈레반은 물론 한국의 반미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북미 대륙에 살았던 인디언 인구가 궁금해 자료를 찾았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오클라호마주립대의 러셀 손턴 교수는 ‘아메리칸 인디언 학살과 생존(1990)’에서 유럽인들의 신대륙 이주 당시 미국 지역 인디언을 적게는 210만 명, 많게는 1800만 명까지로 추산했다. 천연두와 홍역 등 구대륙에서 옮겨왔던 질병 감염에도 원인이 있다지만 인디언들은 대부분 백인들의 땅 뺏기 과정에서 희생됐다. 독일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 600여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전과가 있다.

하지만 현재를 과거의 창살 속에 가둬둘 수는 없다. 과거 선조들의 행위로 현재의 보복이 정당화된다는 논리는 테러리스트들의 전유물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언급처럼 지난 11일 파리는 세계의 수도였다. 그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 34명의 세계 정상급 인사들은 테러 반대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 3㎞ 행진을 이끌었다.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팔레스타인에서도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참석했다.

세계 언론들은 파리 행진에 불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미국 리더십의 부재를 확인한 자리’라고 비판하고 있다. 의아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파리 행진 불참을 ‘나쁜 선택’이라고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스라엘은 언제 다시 팔레스타인을 폭격할지 모르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침공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프랑스, 독일에서도 반이슬람 테러가 터질 수 있다. 역사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단지 선언적 행진을 넘어서 반달리즘의 종식을 향한 실질적이고 항구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jklee@munhwa.com
이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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