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순옥(가운데)·환경노동위원회 이인영(오른쪽 세 번째)·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유승우(왼쪽 세 번째) 의원과 한국노총·민노총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대만 ‘이잉크(E-ink)’가 대주주인 하이디스테크놀러지의 공장폐쇄 및 정리해고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순옥(가운데)·환경노동위원회 이인영(오른쪽 세 번째)·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유승우(왼쪽 세 번째) 의원과 한국노총·민노총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대만 ‘이잉크(E-ink)’가 대주주인 하이디스테크놀러지의 공장폐쇄 및 정리해고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3) 투기 外資에 뒤통수 맞는 알짜 기업LCD기술 원조社 … 中, 2002년 인수
생산에 투자 안해 4년 만에 법정관리

대만社 인수 뒤엔 특허사용료만 챙겨
年900억 벌면서 5년간 400억만 투자

외국에 두 번 당하며 1600여명 실직
업계선 “산업기술보호법 강화” 요구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인수·합병(M&A)에 의한 쌍용자동차 기술 유출 논란에 대해 한국 검찰과 법원은 무혐의 처분 및 무죄 선고를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한 논란이 가시기도 전에 ‘제2의 쌍용차 기술 유출 사건’ 논란으로 비화될 만한 일이 16일 현재도 진행되고 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른바 ‘해외 먹튀 자본’에 의한 국내기술 유출 우려다. 이 과정에서 대량 정리해고, 공장폐쇄 등으로 인한 직원들의 피해와 해당 업체가 입은 막대한 금전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자유무역협정(FTA)이 늘어나면 앞으로 이 같은 해외 자본의 국내 기업 인수와 이로 인한 기술유출 피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경기 이천의 박막트랜지스터(TFT) 기반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업체 하이디스테크놀러지(하이디스)가 현재 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10여 년 동안 중국과 대만 자본 등에 잇따라 매각당하는 과정에서 기술만 털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들 외국자본이 돌아가며 하이디스를 인수한 뒤 국내에는 제대로 된 투자도 하지 않고 높은 기술특허료만 챙기면서 첨단기술을 빼내는 데만 주력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순옥(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등에 따르면 대만 ‘이잉크(E-ink)’는 2007년 하이디스 인수 이후 생산적 투자는 거의 하지 않고 기술 유출에만 집중해 왔으며 지난 6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일방적으로 공장가동 중단을 결정하고 직원들에게는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잉크는 7일 공장폐쇄 및 생산 중단 방침을 이천시청과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 등에 통보했다. 그동안 외부 신규투자는 물론 M&A 등을 추진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하이디스는 국내 원조 LCD 기업으로, 한국이 LCD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1990년대보다 앞서 1989년 출범한 현대전자 LCD사업본부가 그 뿌리다. 2001년 현대전자로부터 분사해 하이디스로 회사명을 바꿨으며 2002년 부도난 현대전자를 분리 매각하는 과정에서 중국기업 BOE에 매각됐다. 그러나 하이디스를 사들인 BOE가 한국 내 라인에 투자하지 않고 중국 내 생산라인에만 적극 투자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BOE하이디스는 2006년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다. 2003년 연간 매출 7965억 원, 영업이익 961억 원을 기록했던 하이디스는 BOE에 인수된 뒤인 2005년에는 연간 매출 4649억 원에 영업손실 1099억 원을 기록하는 등 재무상태가 악화한 부실회사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BOE는 하이디스의 원천기술을 공유한다면서 양사의 전산망을 통합해 4331건에 이르는 기술자료를 유출한 것으로 지난 2008년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문제로 관련자들은 구속됐지만 하이디스는 핵심기술이 외부에 노출되는 치명타를 입었다. BOE하이디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에도 최대주주인 BOE 측은 회생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LCD패널 특허권을 넘길 것을 요구한 바 있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먹튀 자본’에 의한 국산기술 유출 사례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결국 하이디스는 이잉크에 인수됐지만 이잉크 역시 기술이나 설비에 대한 투자 없이 하이디스가 보유한 광시야각(FFS) 원천기술을 대만 협력 업체들과 공유해 특허사용료를 챙기는 방식으로 기술만 빼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내 기업도 로열티를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잉크는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회사 평가가 높아졌다. 하이디스로서는 여기저기 매각당하며 기술만 털려 나간 셈이다.하이디스가 이처럼 만신창이가 되는 동안 입은 금전적, 인적 피해도 심각하다. 이잉크가 하이디스를 인수한 다음 해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의 설비투자액은 400억 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는 매출액 대비 2%에 불과하다. 반면 이잉크가 2014년 한 해에 특허권 장사로만 벌어들인 수수료는 약 9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순옥 의원실은 “이런 특허 수익의 20%만이라도 신기술 개발과 생산라인에 투자한다면 FFS기술을 원천기술로 가진 하이디스는 LCD 시장에서 충분한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의 ‘먹튀’를 당하는 사이 하이디스에서는 1600여 명이 직장을 잃었다. 2000년대 초반 2000여 명에 달했던 하이디스 직원은 BOE에 인수된 후 법정관리 및 BOE 철수 과정에서 1000여 명으로 줄었다. 이잉크에 인수된 후에는 의도적인 물량감소로 인한 장기휴업, 반강제적인 권고사직 등의 인력감축 절차를 거치며 2014년 말 377명으로까지 인원이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 핵심기술의 범위를 보다 확대하고 불법적·편법적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산업기술보호법을 강화해야 한다”며 “투기성 외국자본을 방지할 수 있는 외국인투자촉진법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외국 자본만 비난할 게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기술가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과 금융사들에도 책임이 있다”며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국내 자본이든 외국 자본이든 따질 상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준희·방승배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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