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 종교학자·아산나눔재단 이사장
한국의 대표적 종교학자인 정진홍(78)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현실지향의 유연하고 열린 사고의 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스스로 절망할 그루터기조차 없었다고 표현한 지독한 가난과 참혹한 6·25전쟁을 거치며 성장한 그는 20세기 종교사가 미르치아 엘리아데를 사사한 뒤, 종교를 신앙이 아닌 문화로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며 국내 종교학을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강단에서는 열린 사고와 풍부한 문학적 수사로 학생들을 매료시킨 명강의 교수였고, 예민한 현실 종교와 사회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해온 종교학자였다. 2011년 아산나눔재단 초대 이사장직을 맡아 4년째 재단을 이끌고 있는 그를 2015년 새해에 만난 것은 이 ‘열린 유연함’에 묻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정치는 물론 사회문제와 영화 한 편까지 모두 진영 논리로 해석되며 목청 높이는 독설가만 쏟아지는 한국 사회에서 함께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소통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이야기는 기부와 나눔의 차이에서 시작해, 청년과 기성세대, 한국사회의 유치함과 심판자 노릇을 하는 종교에 대한 비판, 자녀 교육, 자본주의의 문제, 평소 많은 관심을 보여온 나이 듦과 죽음의 의미를 거쳐 삶의 신비로 마무리됐다. 다양한 색깔, 여러 층위의 주제 같지만 이들을 모두 끌고 간 중심 힘은 ‘좋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었다. 12일 서울 종로구 아산나눔재단 사무실에서 정 이사장을 만났다.
―아산재단을 4년째 이끌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지요.
“돈을 버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줄 알았다. 그런데 와서 보니 돈 쓰는 일이 버는 일보다 더 힘들더라.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무조건 선은 아니다. 돈이라는 게 결국 힘인데, 그 힘을 선하게 발휘해 좋은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공자는 사람의 품성을 테스트할 때 돈을 맡겨 보라고 했다. 돈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지, 얼마나 사람다운지를 알 수 있다는 거다. 재단 일을 하면서 그런 것을 많이 느꼈다.”
―취임 당시 재단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좋은 점을 확산해, 어두운 그늘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런지요. 평소 나눔은 기부와 다르다는 말씀도 했는데요.
“우리 재단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어려운 사람에게 시혜하자는 게 아니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이다. 나눔은 ‘디스트리뷰트(distribute)’가 아니라 ‘셰어링(sharing)’이다. 나는 내 몫이 있고 너는 네 몫이 있는데 같이 공유를 하자. 그게 나눔이다. 우리 시대에 자본주의의 모순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체제 담론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단순하게 이야기된다. 자본주의 때문에 청년들이 이렇게 됐다는 식이다. 평등하게 기회를 줘야 하고, 평등하게 먹고 살아야 하고, 평등하게 벌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계급이론은 잘 모르지만 세상은 본래 불평등하다. 남녀가 만들어진 것도, 동서양에 피부색이 다른 것도, 어느 시대에 태어났느냐도 평등하지 않다. 평등해야 한다는 것은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고 억지다. 억지는 언제나 파괴에 도달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삶의 조건은 모두 불평등하지만, 온전한 인간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평등주의자이다. 우리는 못났다는 점에서 모두 평등하다. 그래서 서로 모자란 것을 채워주고 살아야 한다. 나눔은 바로 그런 것이다. 내가 모자란 것을 네가 채워주고, 네가 모자란 것을 내가 채워줘야 한다. 그걸 모를 때 문제가 생긴다.”
―아산나눔재단은 청년 해외연수, 창업 프로그램 등 청년들에 중심이 가 있습니다. 이들 일을 진행하면서 청년들에 대해 느낀 점이 있는지요.
“일을 하면서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잘못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좀 과장을 하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있다고 전제하는 것 같다. 그런데 좀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가 그렇게 비참한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을 안타깝고 딱하게 보며 위로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면서. 어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을 분노하게 해서 그 분노를 길거리에서 다 소진하게 한다. 또 하면 된다고 한다. 굉장히 기만적인 얘기다. 젊은 사람들이 위로에, 분노에, ‘하면 된다’는 낙관주의에 길들여진다. 젊은이들 스스로 자기 주인이 되도록 하는 그 무엇인가가 없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하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뭐 하고 살래, 어디에 취직할래라는 이야기 전에 넌 왜 사느냐, 누구냐, 도대체 어디 있는 인간이냐고 물어봐야 한다. 소크라테스 식으로 젊은이들을 타락시켜야 한다. 내가 왜 사는지 몰라서 혼란에 빠지도록 해야 한다. 위로, 분노, 환상적 낙관주의에 예속되기보다 스스로 난파당한 경험 속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 그래서 정 이사장은 재단의 해외 인턴이나 창업 준비 프로그램 등에 반드시 왜 돈을 벌고, 왜 취직하고, 왜 창업하는지 등 ‘왜’를 질문하게 한다고 했다.
―청년들만의 얘기가 아니고 기성세대를 포함해 우리 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들보다 훨씬 낫다. 젊은이들은 그럴 능력이 있다. 저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처음 갔을 때나 크렘린 궁전에 갔을 때 적진의 한복판에 온 기분이었다. 우리 세대는 반쪽 세계를 살았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배낭을 메고 막 돌아다니지 않는가. 세상을 보는 눈이 우리보다 훨씬 넓다. 어른들은 인정해야 한다. 청년들을 위로하거나 분노케 하거나 환상적인 꿈을 꾸게 하기보다 ‘나는 신뢰받고 있다’는 자의식을 만들어줘야 한다. 모든 세대가, 역사가, 현실이 날 신뢰하고 있다, 난 신뢰받는 존재라는 기분을 갖게 해야 한다. 일을 맡겨야 한다. 그래야 책임의식이 생긴다. 자식이 제일 많이 성장할 때는 부모가 믿어줄 때다.”
―자녀 키울 때도 이런 원칙을 적용했는지요.
“아들이 둘인데 둘 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내가 아비로서 너희를 키우는 것은 이제 끝났다고 했다. 너희는 성인이니까, 학비를 대줄 의무가 없다, 너희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기본적으로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도 당연히 받을 것이 아니라 선물이니까 이제 나에게 고맙다고 하라고 했다. 단돈 10원도 그냥 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는 것도 있다. 내가 아버지 없이 자라서 자식들을 아버지 없는 자식처럼 키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녀석이 손자하고 지내는 것을 보면 그런 친구가 없다. 저 녀석이 아버지와 스킨십이 궁해서 그런가 그런 생각도 한다.” 어려서부터 절대 과외는 없다고 키운 그의 큰아들은 프린스턴대에서 시스템 매니지먼트를 하고, 둘째 아들은 한양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요즘 사교육비도 많이 들고, 성인이 돼서도 부모의 도움을 받는 자녀들이 많은 시대인데요.
“그런 건 아이들을 못 크게 한다. 성숙한 퍼스널리티는 책임 주체가 되는 것이다. 나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도 책임 주체가 돼야 한다. 그게 안 되면 나이를 먹어도 아이에 머문다. 마흔 넘은 교수가 업무 관련한 공식회의에서 ‘아빠한테 여쭤볼게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과외로 천재가 만들어져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돼 아이들 가르친다. 사회가 점차 유치해지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 부모들이 자식들의 결혼을 결정한다. 얼마나 유치한 사회인가. 자녀들을 책임 주체가 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요즘 애들도 가능하면 늦게까지 부모한테 돈 받아 쓰겠다고 한다. 기가 막힌다.”
―평소 우리 사회가 나이가 들지 않는 사회라고 했는데요.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20년 넘게 한강 가에 사는데 처음엔 한강 둔치를 한강대교에서 잠수교까지 뛰었다. 그때는 목표인 잠수교와 한강대교만 보였다. 어느 순간 뛰는 게 안 됐다. 속보를 했다. 어느 순간 그게 또 안 됐다. 지금은 어슬렁거린다. 그런데 잃으면 얻는 게 있다. 달리기를 잃어버리니 속보를 얻었고, 속보를 잃으니 어슬렁거림을 얻었다. 뛸 때는 다리만 보이더니 걸으니 나무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물결도 보였다. 어슬렁거리니 들꽃도 보이고 바람 소리도 들린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실은 절대 유실되는 게 아니다. 새 지평이 열리는 것이다.”
―나이 듦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된 시대를 처음 맞고 있다. 지금 노인들은 준비되지 않은 채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착각을 많이 한다. (의학 등으로) 죽음을 유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하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지체된 죽음(Delayed Death)의 시대다. 어찌 됐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해야 하는 때가 됐다. 중요한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사람들 모두 끝을 바라보며 살지 말고 끝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면서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죽음을 바라보고 살면 절망이지만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고 살면 절망보다 삶을 어떻게 완성시켜 나갈까 생각하게 된다. 조금 더 진지하게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1950년대에 어떻게 종교학을 선택했는지요.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종교학을 안 했을 것이다. 곧 죽는다고 생각했다. 대학 갈 형편도 못 됐는데 당숙이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놓으면 된다면서 올라오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 시시포스 신화를 읽었는데 돌을 굴려 올리면 다시 떨어지는 절망의 상징 시시포스가 부러웠다. 나에게도 굴릴 돌이라도 있다면, 밀고 올라갈 산자락이라도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절망할 그루터기도 없었다. 그때 희망이 없으면 절망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책이나 읽다 죽겠다며 철학과에 가려 했는데, 철학과 다음에 종교학과가 있더라. 집안이 어려워 종교기관에서 좀 살기도 해서, 종교가 중요했다. 그래서 종교학과를 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들어갔는데 학교에서 만난 종교인들에게 실망했다.”
―그래서 신앙으로서 종교가 아니라 문화로서의 종교를 말했는지요.
“공부를 하다 보니 신의 계시가 있어서 기독교가 생겼다거나,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불교가 생긴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삶이 그런 현상을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됐다.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은 여성을 내가 사랑하게 되면 절대 유일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너밖에 없다’하고 산다. 종교도 그렇다. 신의 계시라든가, 절대적인 가르침이라든가, 우리만이 옳다든가, 그건 아니다.”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종교야말로 정직한 인식과 열린 상상력을 아울러 갖춰야 한다. 그것이 결여된 종교는 심판자 기능을 하려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잘됐다 잘못했다 얘기하려 하는데, 실제로는 전부 잘못됐다고 얘기한다. 종교도 이제는 매개 기능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처럼 진영 논리로 갈라진 사회에서 종교가 어느 진영에 붙는 게 아니고, 그 사이에서 돌팔매를 맞아도 매개 기능을 해야 한다. 모든 주장에는 논거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유일한 진리는 아니다. 종교는 중개자가 돼야 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가 종교이고, 삶과 죽음, 선과 악의 중개자가 종교이다. 언제 인간이 절대 선이나 악이었나. 그 사이에 만들어진 게 종교이다. 그런데 심판자를 하려니 계속 저주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양쪽에서 욕먹고 테러당한다. 그래서 모든 구세주는 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요하다. 정말 필요하다.”
―서울대 정년퇴임할 때 책을 마음껏 읽게 돼 좋다고 말했는데요. 요즘 기쁨을 주는 책은 무엇인가요.
“교수직을 하면 가르쳐야 할 책들과 읽고 싶은 책이 일치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래도 요즘은 굉장히 좋아졌다. 휴대전화에 책을 내려받아서 이동하면서 읽는다. 또 굉장히 즐거운 것이 제자들이 크니까 그 친구들의 논문을 읽는 게 그렇게 행복하다. 지난해 희수(喜壽)에 (정 이사장이 이사장직을 맡고있는)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정진홍 종교학’ 세미나를 했다. 8명이 발표했는데, 이건 틀린 자료를 인용했다, 이건 내 생각과 다르다며 난도질을 하더라. 얼마나 차디찬지. 이 논문들을 묶어 지난해 11월에 책을 내줬다. 생각해 보니 참 재미있었다. 정진홍이라는 인간을 기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비판적으로 접근해 책을 내준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진지하게.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좋다. 그 친구들 논문을 읽으면 그렇게 만족스럽다.”
―앞으로 계획은.
“제가 일흔여덟이다. 80대까지 공직을 가지는 것은 망발인 거 같다. 현장에서 보면 훌륭한 사람이 정말 많다. 그래서 빨리 모든 것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학교도 내 언어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껴지면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정 이사장께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할 자격이 없다”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내가 꿈도 꾸지 못할 미래를 살 사람들이기에 더더욱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은 윗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이런 아픔이 있었고 이런 희열이 있었다는 자기 고백 정도일 뿐이고, 그런 고백조차 안 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기성세대는 떠나갈 때 젊은 사람들에게 짐을 남겨줘서는 안 된다며 ‘남긴 것은 안경밖에 없었다’는 간디처럼 안경 하나 정도 남기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들어 삶이 참 고맙고 신비하다며 ‘신비’라는 용어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신비라는 단어가 좋은 삶에 대한 그의 답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돈에 그렇게 고생했는데 지금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을 하는 게 참, 허허. 그런 삶이 참 이상하게 느껴진다. 고맙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용어가 신비이다. 모르겠다는 뜻이 아니고 삶 자체에 옷깃을 여미고 손을 읍하고 경청해야 되는 실체 같은 것. 그런 느낌이 든다. 참 신비롭다.”
인터뷰 = 최현미 차장(문화부)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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