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중국·라틴아메리카 장관급 회의가 열렸던 지난 9일 베이징(北京)에서 예정에 없던 발표문이 하나 나왔다. 장관급 회의임에도 직접 중국을 방문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정상회담 뒤 중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빠진 중남미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 에너지 개발 등에 2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던 것. 인도 국영기업인 석유천연가스공사(ONGC)는 최근 미국 셰브런과 합작으로 뉴질랜드에 15개 석유·가스 탐사권을 획득했으며 모잠비크·브라질의 자원 개발에도 70억 달러를 투자했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원가구조가 나쁘거나 자금력이 약한 소형 셰일가스 업체들의 도산이 잇따르자 이를 싼값에 확보하기 위한 중국과 일본 등의 물밑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제유가 급락 속에 자원확보를 위한 각국 간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국제유가 폭락으로 시장가격이 크게 떨어진 유전과 가스전, 주요 광산을 대거 사들이려는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국내 상황은 그 반대다. 정부와 에너지 공기업 안팎에서 ‘해외자원개발’은 금기시되고 있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더욱이 국회가 오는 4월 7일까지 정부와 공기업의 해외 자원개발 국정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됐거나 모럴해저드가 있었다면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엄한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 그러잖아도 시빗거리가 많은 분야에 대통령 형님과 그 측근이 설치고 다녀 더 큰 정치적 논란과 오해를 낳았던 측면도 뼈아픈 교훈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안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특수성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탐사에서 생산까지 통상 20∼3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자원개발사업은 산에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평가도 중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투자한 지 3, 4년밖에 안 된 사업에 대해 회수율을 기준으로 현재의 장부가격상 손실을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이를 배겨낼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거의 없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성공할 경우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세계적인 메이저 회사들도 성공률이 10% 안팎에 그칠 만큼 리스크가 큰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90%의 실패에 쏟은 돈을 비싼 수업료로 생각하고 이를 딛고 10%의 성공을 일궈내온 게 해외 자원개발 역사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과거 이명박정부가 ‘자주 개발률 30% 달성’이라는 단기 목표를 세워놓고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너무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던 점은 뼈아픈 경험이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석유공사 등 국내 에너지 공기업들이 무리수를 둘 것이란 점을 꿰뚫고 있던 노회한 글로벌 자원 업체들과의 거래는 우리 패를 모두 보여주고 벌이는 도박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투자 전략상의 미스는 분명히 짚어봐야겠지만 탐사 실패를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실패에서 얻는 교훈과 경험을 다른 사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자원외교는 국가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계 에너지 개발 시장에 엄청난 규모로 투자해온 중국과 일본은 최근 유가 급락으로 천문학적인 투자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투자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보다 이를 딛고 또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한 에너지 자원 확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단기평가를 근거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마녀사냥식으로 몰아붙여서도 안 된다. 이게 지나치면 자칫 자원개발 관련자들이 논쟁적인 사안이나 책임질 만한 결정을 회피하고 납작 엎드리는 에너지 공기업발 ‘변양호 신드롬’을 초래할 수도 있다.
국정감사가 에너지 개발사업의 싹을 잘라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유가가 40달러 선으로 떨어진 지금은 해외 자원개발 투자 적기다. 책임은 분명히 밝히면서 해외 자원개발 경쟁력을 높이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에는 되레 힘을 실어줘야 한다.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해외 자원개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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