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해외유출 73%가 中企… 자료복사·반출 규정도 없어 산업기밀이 유출될 경우 개별 기업이 생존을 위협받을 만큼 치명적인 것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산업기밀 보호를 위한 한국 기업들의 보안 인프라는 취약하다는 평가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보안 수준이 낮아 산업스파이들의 핵심 표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보안 강화와 함께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일 정보당국 등에 따르면 한국 전체기업 중 정보보안 예산이 매출액의 1% 미만인 기업이 80%에 달한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보안관리 규정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 30%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통계에 따르면 2009∼2013년 발생한 기술 해외 유출 사건 209건 중 73%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산업보안 시스템에 투자할 여력이 없고, 보안 의식이 낮은 편이라 기술유출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기업 셋 중 하나는 상시적인 기술유출 위험에 처해 있고, 평균 3년마다 기술유출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게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부실한 보안 인프라는 보호받아야 할 핵심 기술을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창원공단에 위치한 오토바이 제조업체 S사 전 대표이사 이모(63) 씨 등은 지난 2011년 주요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씨 등이 유출한 자료는 회사에서 비밀로 지정되지 않았고, 자료에 대한 접근·복사·반출 등을 막을 실질적인 관리가 없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례는 주요 기술에 대해 평소 회사에서 철저하게 비밀로 관리하고, 직원들로부터 보안 서약 각서 등을 받는 노력이 있을 때만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한 기술유출을 인정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인력과 자금 부족으로 비밀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법원에서 기술의 비밀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협력업체인 중소·벤처기업에서도 기술 관리가 철저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11년 서울중앙지법은 LG전자 에어컨 제작에 쓰이는 핵심 설비의 도면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중국 벤처기업 이사 고모 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 씨는 LG전자 협력업체였던 국내 벤처기업 P사를 퇴직하면서 관련 기술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P사는 비밀유지 서약서를 받은 적이 없고 최소한의 내부자료 비밀관리 지침도 세우지 않아 고 씨 등이 (회사)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무죄 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고 씨는 중국 가전업체에 LG전자 에어컨의 핵심 기술인 플라스마를 이용한 금속표면처리 기술을 넘기려다 적발됐다. 당시 업계는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 피해액이 1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가적으로 산업기술 유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산업기밀 보호는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산업 전체를 좌우하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기업 단위의 대응은 물론 국가 차원의 다양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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