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1일 오전 2시. 경찰청 상황실 모니터에 ‘비상상황’을 알리는 긴급 팝업창이 떴다. 같은 시간 경찰청과 시스템을 연계해 쓰고 있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직원들에게도 긴급 알림 메시지가 전송됐다. 성폭행 전력이 있는 전과 3범 A(40) 씨에게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는 내용이었다. 맥박, 혈압 등 신체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전송해 주는 ‘지능형 전자발찌’가 보내온 A 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0.07%였다. 혈압도 평소보다 10%가량 높았고, 맥박은 20% 이상 빨리 뛰었다. 이렇게 전송된 정보는 A 씨가 5년 전 동거녀를 찾아가 저지른 성폭행 당시와 90% 이상 일치했다. 심지어 편의점에 들러 신용카드로 껌 한 통을 산 것도 당시와 동일했다.
경찰청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A 씨의 위치를 확인했고, CCTV로 A 씨가 다세대주택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장면을 확인했다. 마침 경찰이 ‘지리적 프로파일링시스템(지오프로스)’을 이용해 전날 오후 강력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이 지역을 예측해 순찰 인력을 두 배로 늘린 상태였다. 지역 경찰은 경찰청 상황실로부터 출동 지시를 받은 지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A 씨가 한 손에 흉기를 들고 이 다세대주택의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통해 무단 침입한 직후였다.
가상의 상황이지만 머지않아 이런 장면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나 봤던 장면들이 조만간 현실이 되는 것이다.
경찰은 전과자 정보와 유동 인구, 날씨 정보 등을 토대로 특정 지역의 범죄 가능성을 예측해 알려 주는 지오프로스를 2009년부터 운용 중이다.
지오프로스는 죄종별 범죄 발생 위치와 시간, 범죄자의 인구학적 특성 등이 담긴 경찰의 범죄 데이터와 전국을 37만여 개 구역으로 나눈 지도를 연계해 우범지역을 등고선 형태로 보여 준다. 특히 지난해 1월에는 프로그램을 고도화해 한 구역 내 유동인구 수, CCTV 수, 유흥업소 영업 상황, 기상정보, 경찰서와의 거리, 전과자 거주 상황 등 42개 변수와 범죄 발생의 상관관계를 따져 ‘범죄지수’를 산출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은 지오프로스를 활용해 단기간 내 많은 성과를 냈다. 지난해 4월 7일 광주 북구 이면도로에서 발생한 직장인 이모(여·25) 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씨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귀가하던 중 인근 보리밭에 숨어 있던 정모(33) 씨의 습격을 받았다. 정 씨는 이 씨 얼굴을 때리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불과 1분이 지났을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정 씨는 경찰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성폭행 시도 직후 경찰이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지오프로스 덕분이었다. 이날 지오프로스가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보리밭 인근을 예측했고, 이 일대에 대해 경찰이 순찰을 강화했던 것이다.
또 부산 경찰도 지오프로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연쇄 절도 예상 범행지 주변에서 잠복해 지난해 6월 절도범을 검거했고, 경남 경찰은 부산·김해·창원 등의 편의점이나 PC방에서 15회 이상 연쇄 강도 행각을 벌인 피의자의 다음 범행지를 지오프로스로 예측해 범인을 검거했다.
범죄 예방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경기 파주경찰서는 범죄 위험지역 중심으로 순찰차량을 집중 배치해 112 신고 접수 시 현장 도착 시간을 5분 6초에서 2분 32초가량으로 대폭 줄였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오프로스를 바탕으로 위험지역 중심으로 순찰 활동을 벌인 결과, 강도(44.4%), 강간(22.1%), 절도 (13.1%)가 크게 감소했다. 또 광주지방경찰청은 지오프로스가 예측한 범죄 위험지역 중심으로 한 순찰 경로인 ‘치안올레길’를 운영해 범죄 발생 감소 효과를 봤다.
해외에서도 지오프로스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런던경찰청은 한 컨설팅 기업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지난 4년 동안 발생한 범죄 데이터를 수집 중이다. 데이터에는 범죄 날짜와 장소, 범인을 비롯해 범인이 사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도 포함된다. 분노와 불안 등 게시물에 표현된 해당 인물의 감정 상태까지 고려한다. 이를 통해 ‘고위험 폭력조직’을 가려내고 이들 조직원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분석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이미 범죄 예측으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2년 빅데이터 기반 범죄 예측 시스템을 도입한 후 범죄 발생률이 25%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범죄 예측 정확성을 높이려면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한 온갖 빅데이터가 수집되고 활용되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SNS 대화 내용과 CCTV, 카드 사용 내역, 휴대전화 사용 내역 등도 수집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수사기관에 의해 이 같은 정보들이 안전하게 관리되면 다행이지만, 해커 등에 의해 뚫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범죄 예측 필요성 못지않게 사생활 침해 우려도 적지 않아 적절한 보완책을 마련해 가며 지오프로스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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