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그곳은 복마전이었다. 검찰총장을 비롯하여 법무부 장관까지 연루되어 이전투구를 벌이는 그곳에서 정의구현을 위한 공권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 세력들이 정의와 원칙 그리고 도덕과 양심을 훼손시키면서 세상을 농락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복마전은 죽을 자와 살아갈 자의 인생을 건 혈투를 다룬 SBS 미니시리즈 드라마 ‘펀치’의 극적 상황일 뿐이니까.

국가가 검찰에 부여한 공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도덕과 정의를 저버린 채 권력의 충견이 되었던 한 남자가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6개월의 시한부 인생 앞에 직면한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혼도 마다하지 않았던 남자 박정환(김래원)은 통한의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다. 그가 일조했던 부정과 부패의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는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과 맞서 가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30여 년을 생존의 벼랑 끝에 매달려 살았던 박정환은 그렇게 죽음을 앞두고 삶의 의지를 다진다.

괴물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대단히 처절하게 전개된다.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 목덜미를 낚아채는 순간, 또 다른 무엇인가가 나타나 전세가 역전된다. 공격과 방어의 심리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공권력은 실종되고 탐욕스러운 개인의 욕망만이 부각된다.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박정환과 이태준의 혈투가 섬뜩하게 보이는 것도 그래서이다. 조직과 개인이 아닌, 개인과 개인의 대립과 갈등 속에 공권력이 실종되는 현상이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불신 탓이 크다.

괴물은 또 있다. 법조 명문가의 자제로 검찰 개혁의 칼날을 빼든 법무부 장관 윤지숙(최명길)은 수많은 검사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시어머니가 저지른 아들의 병역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판사로 임명된 아들의 미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태준과 협잡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기득권 세력의 추악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검사가 들어야 할 명령은 청와대의 하명이 아니라 법의 명령입니다”면서 윤지숙 장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차장검사 정국현(김응수) 역시 미국 유학 중에 마리화나를 피운 아들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주체로서의 흠결이 많은 인물들 사이에서 정의와 원칙 그리고 도덕과 양심에 따라 수사권과 공소권을 행사하려는 검사 신하경(김아중)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녀는 부정과 비리의 대명사인 전 남편 박정환을 정의로 치유시켜 아이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 주고 싶지만, 괴물들의 혈투가 벌어지는 복마전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그저 법전과 조서를 중시하는 그녀의 원칙으로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조직적 범죄가 개인적 일탈로 둔갑하고, 정치권력의 입김이 법의 원칙보다 우선 되는 세상에서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한 정의 구현은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신하경 검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고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다만, 정치권력과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을 때 “법은 하나다”라는 명제가 성립될 수 있다.

충남대 교수·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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