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할 때는 참 배가 고팠어요.”

이제는 주연급 반열에 오른 영화배우들이 인터뷰 때 심심치 않게 하는 말입니다.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오를 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소주 한 병을 대여섯 명이 한 잔씩 나눠마셨다는 이야기는 고전에 속하죠. 당시 그들을 버티게 한 동력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었습니다.

충무로에는 ‘영화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을 뛰어넘는 충무로의 보이지 않는 끈이죠. 미국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로 대변되듯 한국 영화 시장의 본류는 ‘충무로’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영화를 ‘어디서 배웠느냐’가 아니라 ‘누구 밑에서 배웠느냐’가 우선하기도 했죠. 도제식 시스템입니다. 즉 ‘영화인’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은 충무로에서 함께 고생하고 부대끼며 잔뼈가 굵은 ‘식구’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단어가 발목을 잡을 때도 있습니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영화인’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고통 분담을 강요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요즘도 ‘을’로 분류되는 몇몇 영화 홍보사가 잔금을 받지 못해 속앓이하곤 합니다. 게다가 상후하박 구조 속에 흥행에 성공해도 ‘버는 ×만 번다’는 불평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기도 하죠. 인구 5000만 명인 나라에서 1000만 명이 넘게 보는 영화가 1년에 1편씩은 나오는 청사진 뒤에는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난한 스태프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제시장’의 1000만 관객 달성이 반갑습니다. 이 영화는 2011년 만들어진 표준근로계약서대로 스태프의 처우를 맞춘 첫 사례라 볼 수 있죠. 표준근로계약서가 뭐냐고요? 촬영 시간이 하루 12시간을 넘지 않고, 1주일에 1일 휴식을 보장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하는 것 등입니다. 주5일제, 주당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인 시대에 무슨 소리냐고요? 여전히 많은 영화인이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상황 속에서 ‘열정 페이’를 강요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1000만 관객이 들었으니 언론이 슬슬 ‘국제시장’의 돈잔치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지요? 다행인 건, 윤제균 감독이 ‘국제시장’에 참여한 막내 스태프에게까지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약속한 겁니다. 참여한 영화가 소위 ‘대박’이 나도 ‘남의 이야기’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이들이, 이번에는 통장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짓게 된 거죠. 일각에서 ‘우파 영화’라 불렸던 ‘국제시장’이 대기업 자본과 배급을 바탕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후, 균형과 분배에 앞장선다? 참 훈훈하면서도 묘한 2015년 1월의 풍경입니다.

더 이상 ‘영화인’이라는 미명 아래 ‘열정 페이’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남의 ‘열정’을 쓰려면 합당한 ‘지불(페이)’을 해야죠!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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