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연출한 하정우“주연할 때보다 1000배 고민 많았다.”

영화 ‘허삼관’의 감독도 주연을 동시에 맡은 하정우는 엄살을 부렸다. 이미 ‘롤러코스터’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그는 ‘허삼관’을 통해 상업 영화는 첫선을 보이게 됐다. 공을 많이 들이고 애착이 큰 만큼 부담도 크고 걱정도 많다. 정작 그와 함께 일했던 이들은 “하정우 감독을 믿고 따랐다”고 입을 모은다. ‘허삼관’을 대중 앞에 내놓는 하정우와 겨울바람이 꽤 찼던 날 삼청동에서 만났다.

△감독으로 인터뷰에 나서는 기분이 어떤가.
=서른 작품 가까이 출연하며 수없이 인터뷰를 해봤지만 신인 감독으로 하려니 낯설다. 그동안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받으면 ‘감독님한테 물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다 이야기해야 한다.(웃음) 대화의 밀도가 2배는 짙어진 것 같다.

△첫 상업 영화를 선보이는 소감을 말해달라.
=주연 배우로 나선 영화가 개봉할 때는 큰일을 앞둔 장남의 입장이었다면 이번에는 아버지의 입장이다. 맨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허삼관’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부성애다. 아버지 이전에 한 남자의 성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총각부터 시작해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돼 가는 허삼관의 모습을 담았다.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떻던가.
=거의 다 만류했다. 하지만 원작을 읽고 허삼관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허삼관 자체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릴 적 하정우가 본 아버지 김용건의 모습이 투영됐나.
=물론이다. 아버지는 허삼관처럼 항상 집에서 면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고 계셨다. 머리 스타일도 허삼관과 비슷했다. 아직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배우에서 감독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길게 가져갔다. 영화의 40%가량은 미리 찍어본 것 같다. 촬영장에는 대역 배우도 있었다. 내가 직접 카메라 리허설을 할 수 없으니 나와 똑같이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입은 대역 배우를 카메라 앞에 세우고 아바타처럼 움직이게 했다.

△하지원과 만남이 화제를 모았다. 하지원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원은 영화 현장에서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배우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 때문에 나 역시 각 장면마다 왜 이 장면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하지원의 의견을 존중했다.

△하정우는 어떤 감독을 지향하나.
=팀 버튼, 우디 앨런 감독의 판타지를 좋아한다. 두 감독의 영화는 표현의 자유가 많다. 그런 판타지의 여유로움이 담긴 1950∼60년대 국내 영화가 없어서 ‘허삼관’은 오히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첫 상업 영화이기 때문에 흥행에 대한 부담이 클 것 같다.
=물론이다. ‘롤러코스터’보다 제작비가 14배 높다. 내게 70억 원을 맡겼으니 감독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첫 상업 영화 연출자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나의 재능만으로 영화를 만들 순 없었기 때문에 여러 버전을 구상하고 투자사, 제작사의 의견을 구했다. 과정만큼은 정직하고 진정성 있게 준비했다.

△감독 데뷔를 후회한 적은 없나.
=되게 많다. ‘이건 능력 밖의 일이다’라고 느끼고, ‘감독이 쉽지 않은 이유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특히 위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이런 깨달음을 얻는 데만 3개월은 걸렸다.

△주연부터 감독까지, 하정우는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같다.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사랑이 컸다. 감독과 배우로서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내가 단순히 돈을 벌고 싶었다면 영화를 만들지 않고 다른 곳에 투자를 했을 거다. 좋은 영화를 보면 자극을 받는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항상 나를 채찍질하려 한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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