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연구·수백억 투자 ‘물거품’ 해외로 유출되는 첨단 산업기술 중 대부분이 중국으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수출기반을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은 핵심 산업기술 유출을 통해 6∼7년 이상의 기술 격차는 단숨에 줄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3일 정보당국 등에 따르면 최근 벌어진 굵직한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은 상당수가 중국과 관련이 있었다. 정보당국은 해외로 유출되는 기술 중 약 60%가 중국 업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출 시도가 일어나는 기술은 대부분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선두권인 가전제품, 자동차, 반도체 기술 등이다. 이 같은 분야는 중국이 후발 주자로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수백억 원을 들여 10년 이상 연구해온 기술이 한순간에 중국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던 대구의 H사에서 전직 직원과 중개업체 직원이 연루된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H사는 자동차 엔진에 동력을 전달하는 유압기기 생산회사로 독점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술개발을 위해 국가로부터도 43억 원을 지원받았고, 자체적으로 개발비 약 24억 원을 투입했다. 2013년 기준 수출금액만 160억 원인 회사로 매년 수출 규모가 2배씩 늘어나던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기술 유출은 H사를 퇴사한 인력과 중국 업체 측을 중개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공모하면서 벌어졌다. 퇴직자 이모 씨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고, 자신들의 물건을 납품할 중국 회사를 소개해줄 중개 회사에도 접근했다. 이 씨는 중국 회사와 거래 경로를 개설하기 위해 H사의 기술도면 등을 빼내 왔고, 이를 중국 측에 그대로 넘겨줬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중국으로 기술이 넘어가면 중국 측은 한국 측과의 거래를 아예 끊어버린다”며 “입수된 도면을 가지고 자체 생산을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핵심 기술들도 중국 측으로 유출되고 있다. 2013년 LG전자 로봇청소기 기술 유출 사건은 한국 대기업과 중국 대형 가전업체 간의 기술 격차를 6∼7년 정도 줄였다고 볼 수 있다. LG전자의 핵심 연구원이었던 윤모(45) 씨는 중국 메이디(美的) 사로부터 연봉 2배를 받는 조건으로 이직하면서 핵심 기술을 유출했다. 당시 메이디 사는 로봇청소기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하고 있었지만, 기술 유출로 인해 조만간 자체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1심 재판을 맡은 창원지법은 “6∼7년 기술 격차가 있는 중국 회사를 단기간에 동일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 기술”이라고 밝혔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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