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린 서동수가 길 건너편의 2층 건물을 보았다. 초등학교 근처여서 아이들이 떼를 지어 앞을 지났다. 오후 2시 반, 하교 시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옆으로 다가선 수행비서 최성갑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장관님, 저는 이곳에 있겠습니다.”

이제는 서동수의 분신이나 같은 최성갑이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수업이 3시부터라니까.”

발을 뗀 서동수가 길을 건너 2층 건물로 다가갔다. 건물 현관에 ‘초록미술학원’이라는 간판이 붙여져 있다. 최성갑의 보고서를 보면 2층 건물은 대지 105평 건평 85평인데 미술학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다음 달에는 문을 닫을 예정이다. 건물주가 건물을 매물로 내놓은 데다 임차료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는 서동수의 뒤로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따라왔다. 좁은 로비가 금방 소음으로 가득 찼다. 안내 데스크도 없어서 두리번거리던 서동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옆쪽 복도에서 유수경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머나.”

놀란 유수경이 입을 딱 벌렸다가 곧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더니 서둘러 다가왔다. 유수경은 스웨터에 바지 차림이었는데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가선 유수경이 물었다.

“여기 웬일이세요?”

서동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반짝였고 볼이 조금 상기되었다.

“어디 잠깐 이야기할 곳이 있을까?”

서동수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묻자 유수경이 팔을 끌었다. 아이들이 지나면서 떠들썩하게 인사를 했다. 건성으로 인사를 받던 유수경이 복도 옆쪽 문을 열었다. 10평쯤의 교실인데 석고상 서너 개가 놓여있을 뿐 비어 있다. 문을 닫은 유수경이 문을 등지고 서서 서동수를 보았다.

“연락도 안 하시고 이렇게 오시면 어떻게 해요? 준비도 못 하게.”

“내가 뭐라고 준비를 해?”

다가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유수경을 보았다.

“여기 선생님이 몇 명이야?”

“저까지 여섯 명.”

“학생은 꽤 많네.”

“학교 옆이니까요.”

“이달 말까지 하고 문 닫는다면서?”

“임차료가 비싸요. 건물도 매물로 내놨고.”

그때 서동수가 쥐고 있던 서류봉투를 유수경에게 내밀었다.

“이 토지하고 건물을 내가 샀어. 이게 권리증이야.”

유수경이 눈앞에서 흔들리는 봉투만 보았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다음 달부터 유수경 씨가 새 미술학원을 개업하도록 해. 권리증을 갖고 있으니까 임차료를 낼 필요가 없겠지.”

서동수가 봉투를 옆쪽 책상 위에 놓더니 다시 작은 봉투를 꺼내 위에 놓았다.

“이건 새로 개업하는 데 필요한 경비로 써. 한번 멋있게 해봐.”

“잠깐만요.”

유수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서동수를 불렀다.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다.

“왜 이러세요?”

“어제 회사에서 숙청 작업을 했어.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 인간들이 횡령한 금액의 백분의 일만 투자를 해도 즐거운 인생을 살게 되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야.”

서동수가 발은 떼어 유수경 옆의 문고리를 잡았다.

“가끔 나는 이런 순간이 즐거워. 바쁘게 살다 보니까 이런 것이 내 취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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