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디는 특정미술사조를 넘어 평범한 정물을 즐겨 그렸다. 화가의 삶조차 고요한 정물화 같았다. 평생 독신으로 이탈리아 볼로냐의 소박한 집에서 세 누이와 살면서 유리병, 주전자 등 정물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1, 2차 세계대전 등 격변기를 반영하듯 침잠과 우울의 정서가 깃든 모란디의 작품은 이탈리아 영화에도 등장한다.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의 2009년작 ‘아이 엠 러브’에서 밀라노 재벌의 거실벽 그림이 모란디 정물화다. 이탈리아 영화의 전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1960년 영화 ‘달콤한 인생’, 미켈란젤로 안토니오 감독의 1961년 작 ‘방’에도 숨은그림찾기처럼 모란디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모란디는 와인병, 설탕그릇, 담배상자부터 그리스도자기, 페르시아꽃병 등 각양각색 사물을 수집했다. 거죽에 색칠해 라벨 문양을 지우고 용기들의 위치를 달리해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정물화를 그리고 또 그렸다. 용기에 내려앉은 뽀얀 잿빛 먼지까지 화폭에 끌어들였다. 군더더기 없이 용기의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회색을 더한 정물화는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색과 면의 추상적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볼로냐 모란디미술관의 소장품 40여 점을 공개하는 서울전시가 마니아들 입소문을 타고 모란디 열풍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튀는 소재와 기법, 난해한 개념 작업이 부각되는 현대미술의 시대에 전통 정물화, 단순한 무채색 그림이 역설적으로 현대인과 정서적 공감대를 이뤄내고 있다. 변화무쌍한 현대의 일상을 거스르며, 한결같이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모란디 그림은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일반인에게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의 의미를 새삼 일깨운다.
가로 세로 20∼40㎝ 크기의 소품을 주로 발표한 모란디의 작업은 작은 화폭에 간략한 선으로 회갈색톤 이미지를 펼쳤던 우리의 박수근(1914∼1965) 화백과도 통한다. 두 사람 다 참혹한 전쟁기, 정신적·경제적 궁핍을 경험하며 예술가로서 상호 교류는 없어도 동시대 화가로서 펼쳤던 정서적 공감대를 두 작가의 작업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은 ‘모란디와의 대화’전을 통해 한층 빛난다. 모란디와 동시대 작가인 박수근·이인성·김환기 등 작고작가 및 현대작가 최인선·고영훈·신미경·강미선·황혜선 등의 작품에서 모란디 정물화 특유의 절제와 고요의 미학을 접할 수 있다. 2전시실 안쪽에서 상영하는 마리오 체멜레가 감독의 영화 ‘모란디의 먼지’도 이번 전시의 중추다.
미술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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