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기는 비디오 아트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을 잇는 국내 1세대 비디오 아티스트다. 백남준이 주로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1980년대 들어 한국을 왕래한 반면, 박현기는 1970년대 말부터 국내를 기반으로 독창적인 비디오 아트와 퍼포먼스를 펼쳤다.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그는 홍익대에서 회화와 건축을 공부하면서 미술계에 발을 들였다. 1970년대 대구에서 건축 인테리어 사업으로 제작 비용을 충당하며 모니터, 카메라 등 영상매체를 활용한 작품을 발표했다.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요 작가로 두각을 나타낸 후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1980년 파리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했고 1980년대 일본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열며 이름을 알렸다. 1990년대 한국에서 비디오 아트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면서 주목을 받았고 ‘만다라’ 시리즈, ‘현현(顯現)’ 시리즈 등 대표작을 쏟아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58세에 타계했다.
박현기의 비디오 아트는 서구 미디어 기술에 동양사상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그는 비디오를 통해 ‘하이테크’의 실현을 추구하기보다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이 서양의 형식 언어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특히 돌탑 사이에 돌을 찍은 영상 모니터를 끼워 넣은 초기작은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현실의 돌과 모니터 속 돌은 서로 중첩돼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상인지를 묻는다.
1997년 뉴욕 킴 포스터 갤러리에서 전시된 ‘만다라’는 성(聖)과 속(俗)의 모호한 경계를 파고든다. 티베트 불교에서 우주의 진리를 상징하는 만다라 형상이 붉은색의 의례용 헌화대 위에 투사된 작품은 언뜻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형상이 무수한 포르노 사진의 합성임을 알 수 있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등 세상의 극단들이 서로 갈등하고 공존하는 일종의 ‘에너지장’을 형성한다”고 했다.
이번 회고전에는 10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작품과 아카이브가 전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증된 자료 2만여 점을 2년 동안 정리 한 뒤 그중 일부를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1965년 학창시절 메모부터 2000년 임종 직전의 스케치까지 다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작품들을 총망라했을 뿐 아니라, 각종 자료를 토대로 그의 주요 작품을 재현해냈기 때문에 박현기의 ‘거의 모든 것’을 전시에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