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월트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김상진(55) 씨. 그는 국내 상영 중인 디즈니 신작 ‘빅 히어로’의 캐릭터 디자인과 컴퓨터 그래픽을 연결하는 작업을 총괄했다. 지난해 초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던 ‘겨울왕국’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캐릭터도 그가 디자인했다.
그는 색각이상자(적록색맹)다. 고교 2년 때 신체검사를 받던 중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림을 워낙 잘 그려 일찌감치 대학 미술학과 진학을 꿈꿔왔던 그에겐 날벼락이었다. 당시 색각이상자는 미대에 입학원서조차 낼 수 없었다. 그는 전공을 경제학과로 바꿨지만 그림을 향한 열정은 놓지 않았다. 그러나 ‘원죄’는 늘 그의 ‘날개’를 붙잡았다. 졸업 후 한 광고회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취직했지만 색맹 사실이 알려지면서 퇴사해야 했다. 그때 마지막 움켜쥔 희망이 애니메이터였다. 그는 한국에서 알게 된 캐나다인 애니메이터의 권유로 그의 스튜디오가 있는 캐나다로 홀연 떠났다. 그리고 6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전 세계 애니메이터들의 요람인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입성했다. 물론 색각이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흔히 색맹이나 색약자를 색각이상자라 통칭한다. 색 식별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정도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한국에서 색각이상자 비율은 남자 6%, 여자 0.5% 정도다. 이들 중 모든 색을 구분할 수 없는 전색맹자는 고작 0.003%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색각이상은 정상적인 눈과 큰 차이가 없어 일상생활에도 별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인 반 고흐도,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도, 만화가 이현세 씨도 모두 색각이상자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적록색약이다.
이젠 국내 대학이나 기업에서 색각이상을 이유로 차별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소방·경찰 등 일부 공무원과 철도 등 운수업종에선 여전히 직업의 특수성이라는 명분 아래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스토리가 장애를 극복한 색각이상자의 인간승리처럼 묘사되는 한국 현실이 안타깝다.” 그의 일침(一針)이 한국에 잔존하는 색각이상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기폭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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